세상이 험해질수록 엿을 먹이고 먹는 일이 많아진다. 믿었던 사람이 믿음을 저버리면 엿을 먹는다. 스스로에게 굳게 한 약속이 작심삼일이 되면서 씁쓸한 엿을 먹는다. 달콤하고 맛난 엿을 먹는 것은 좋은 일인데 어쩌다 보니 ‘엿을 먹이다’는 표현은 좋은 일에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단것에 대한 열망을 달래주던 엿이 왜 이리 욕을 보고 있는 것일까?

엿과 관련된 부정적인 표현은 이뿐만이 아니다. 뭔가 성에 차지 않을 때는 ‘엿 같다’고 하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면 ‘엿 됐다’고 한다. 분명한 기준이 없이 일을 처리하면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말한다. 인기 있는 드라마의 전개가 조금 느려진다 싶으면 ‘엿가락 늘이듯 한다’고 비아냥댄다. 시험 잘 보라고 엿을 사 주거나 고사장 문 앞에 붙이기도 하는 것이 엿인데 어쩌다 보니 몹쓸 음식이 된 것이다.

엿은 초기의 한글 문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엿’이었다. 전국의 방언을 뒤져봐도 어디서나 엿으로만 나타난다. 따라서 엿의 어원이나 방언에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표현의 이유를 찾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엿 먹어라’의 발음이 [염머거라]가 되니 본래 시신과 관련 있는 ‘염[殮] 먹어라’였다고 갖다 붙이기도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은 자유지만 어원에 이런 식의 엉뚱한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엿과 시험이 관련이 있다 보니 많은 사람이 그럴듯하게 여기는 설명도 시험과 관련이 있다. 1960년대 중학교 입시 때 엿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정답으로 설정되지 않은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들의 부모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무즙으로 엿을 고아 교육청에 가서 ‘엿 먹어라!’고 외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1930년대의 신문에도 이미 ‘엿 먹어라!’는 표현이 나오니 이 또한 거짓말이다. 이러한 엉뚱한 설명은 말 그대로 엿을 엿 먹이는 일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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