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경기 거지 같다’는 商人 공격
주권재민 아닌 주권文派 현실
3권도 분립 아닌 대통령 집중

법치주의 훼손하는 文治주의
秋장관, 검찰 개혁 아닌 해체
내 편 감싸면 공화 아닌 獨裁


대통령 앞에서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하소연한 반찬가게 주인은 졸지에 ‘역적’이 됐다. ‘문빠’로 불리는 친문(親文) 세력이 ‘불경하다’며 문자와 전화로 괴롭히고 신상털이에 불매운동까지 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에게 꽃 한 다발을 전달한 꽃집은 친문들의 ‘성지순례’ 장소가 됐다. 대통령에게 사는 게 힘들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되고 그저 잘한다고 박수를 쳐야 화를 모면한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시켜 세계가 부러워하는 2020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김정은만 보면 광적으로 환호하는 북한 주민 모습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014년 펴낸 ‘나의 한국 현대사’라는 책에 민주주의 요체를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주권재민(主權在民)이다. 권력의 정당성 또는 정통성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둘째, 국가권력의 제한과 분산, 상호견제다.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입법권과 사법권, 행정권을 분리하고 선출 공직자의 임기를 제한하며 권력기관들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게 한다. 셋째, 법치주의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오직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으며, 정부는 헌법이 부여한 권한 범위 내에서 법률에 따라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민주주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는 행태를 보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문주주의(文主主議)’ 나라다. 그 특징은 첫째, 민주주의의 주권재민과는 달리 ‘주권문파(文派)’다. 권력이 모든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 지지자만이 주인이라는 의미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우리 이니(문재인 애칭) 마음대로 해’라는 구호를 외쳤다. 대통령으로 뽑아 줬으니 무엇을 해도 된다는 의미다. 절대왕정 시대의 신민(臣民)과 똑같다. ‘혁명의 뇌수이자 노동계급의 대표자인 수령이 없으면 전체 인민들의 육체적·정신적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체사상의 수령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절대자를 반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징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반대하고 조국 전 장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금태섭 의원을 공천에서 떨어뜨리려는 ‘문파’들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를 바로 형사고발 했던 민주당의 행태도 ‘절대 선’에 도전한 보복이다.

둘째, 문주주의는 3권분립이 아닌 ‘3권의 대통령 집중’을 추구한다. 문 대통령은 전직 국회의장이자 여당 대표를 했던 정세균 국무총리를 임명함으로써 국회가 청와대 밑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전직 여당 대표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제1야당의 대표라도 절대 혼자 만나지 않고 나머지 정당 대표들과 함께해야 만날 수 있다. 대통령 취임식 이후 야당을 찾아가 소통하겠다는 약속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쇼’로 판명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사법 농단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를 받들어 내부 조사에서 수차례 무혐의로 결론 난 사건을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내부 자료를 통째로 검찰에 넘겼다.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수처’라는 절대무기가 하나 더 생겨 검사·판사, 고위공직자는 더 권력에 복종하게 됐다. 이러니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 명을 거역했다”며 왕조시대처럼 군림하고 있다. 그러곤 울산 사건의 공소장 내용을 알고 싶은 국민에게 “천천히 알 권리가 있다”며 ‘개·돼지’ 취급까지 하고 있다.

셋째, 법치주의가 아닌 문치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울산시장선거 공작 사건의 공소장을 보면 청와대 7개 비서관실이 대통령 30년 친구의 당선을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했다. 하명(下命)수사에 공약까지 만들어주고, 심지어 경쟁자에겐 자리를 줘 주저앉히려 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이를 수사한 검사를 지방으로 좌천시키고, 이것도 안심이 안 돼 기소권을 ‘코드 검사’에게만 넘기는 유례 없는 수사·기소권 분리를 밀어붙이려 한다. 일개 청와대 비서관이 자신을 기소했다고 검찰총장을 ‘공수처 1호 수사’에 넘기겠다고 공공연히 협박하는 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문치주의의 실체다. ‘법을 이용해 정적을 벌주고 내 편을 감싸는 정부는 입헌공화국이 아니라 독재국가’라는 미국 전직 검사들의 성명서 문구가 귓전에 맴돈다.
이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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