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가 재난이 발생하면 으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료들은 현장을 방문한다. 현장 책임자가 높은 분들에게 브리핑하고 나면 사태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는 뻔한 당부를 하고 돌아선다. 사태를 수습하느라 정신없는 현장에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방문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치지도자의 현장 방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현장 방문의 성의를 보인 만큼 자신의 권한 내에서 필요한 재원을 제공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때론 현장 관계자들에게 격려가 되는 부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재난 사태의 심각성을 걱정하는 국민과 함께한다는 메시지의 전달이다. 국민과 공감하는 정치인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다.

권위적 리더십의 정치지도자는 소통이나 합의 도출 없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방적 지시와 권력을 행사한다. 현장 방문에서도 전문가들을 제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 리더십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약간의 작위적 연출도 묵인한다. 반면에 민주적 지도자는 경청하는 태도와 소통을 중시한다. 현장을 방문하면 피해자의 고통을 들어주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민주적 리더십의 출발점은 공감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어려운 경기가 신종 코로나(COVID-19) 사태로 인해 더욱 위축되자 분위기 쇄신을 위해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이 시장 방문에 나섰다. 민심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공감하긴커녕 상인들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뉴스들이 보도되고 있다.

정부 인사의 손을 잡고 어려움을 호소라도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다. 어쩌면 현 정부를 반대하는 상인들은 공직자가 가게를 방문하는 것조차도 거부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신랄한 정부 비판은 이미 걸러진 셈이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다’고 푸념한 상인은 신상털기 등 사이버 테러를 당하고 있다. ‘거지 같다’는 말이 거친 표현이기는 해도 절실함의 속내가 담긴 호소로 들린다.

이제는 누구든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SNS에다 쏟아 놓는다.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관료들이 초래한 해프닝이 지난 18일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현장 방문이었다. 김 여사가 서울 면목동의 한 시장을 찾아 (일정에 맞춰 건어물 가게에 구비된) 꿀을 구매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아마도 시장 방문에 앞서 김 여사가 부속실에 꿀이 필요해서 사고 싶다는 언질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부인의 방문 동선에 꿀을 파는 전문 가게가 없었다면 행사 책임자는 다른 물건을 구매하도록 유도했어야 옳다. 결과적으로 이번 시장 방문의 진정성이 훼손돼 버렸다.

현장 방문 장면들은 시민들이 가감 없이 말하고 공직자가 함께 걱정하는 내용을 담으면 된다. 시민은 공직자가 즉석에서 해결책을 내놓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어려운 상황을 새겨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여도 나쁘지 않다. 현장 방문이 정치적 쇼로 기획된 게 아니라면 주인공은 공직자가 아니라 시민이란 인식은 너무 당연하다.

1964년 12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면서 당시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를 만나 함께 눈물을 쏟았던 장면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대통령으로서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긴 진심의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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