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열릴 미국 대통령선거에 나선 여야 주요 후보들. 왼쪽부터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민주당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11월 3일 열릴 미국 대통령선거에 나선 여야 주요 후보들. 왼쪽부터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민주당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 끓어오르는 美 ‘돈 선거’

블룸버그, 슈퍼볼 광고하자 트럼프 ‘맞불’… 선거캠프 유지·50개 주 겨냥한 광고 등 선거비용 막대
작년말 현재 전체 12억달러 모금… 슈퍼팩, 상한액 없어 영향력 막강, 공공자금 사용처 제한돼 후보들 기피

억만장자 스타이어·블룸버그
선거자금 98%이상이 자기돈

샌더스는 55%가 소액기부금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중도 대안 카드로 급부상 중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지난해 11월 출마선언 후 2월 중순까지 3개월 동안 광고비로 사용한 돈은 3억3900만 달러(약 4049억 원)다. 광고분석회사 애드버타이징 애널리틱스는 블룸버그 전 시장의 3개월 광고비용이 이미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 당시 광고비를 넘어선 규모라고 평가했다.

경선에 아직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은 블룸버그 전 시장이 당내 후보 지지율 2위까지 오른 건 중도파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부진한 영향도 있지만 돈의 힘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 정치인들이 대선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50개 주를 겨냥해 각종 선거 광고를 내보내고, 광활한 유세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돈, 즉 선거자금 부족은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선거자금이 부족할 경우 당내 경선을 이어가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선거자금은 선거 승리에 있어 최소한의 조건임과 동시에 후보의 역량을 보여주는 척도인 셈이다. 이미 공화당과 민주당을 비롯해 미국 여야 대선 후보자들이 2019년 말까지 모금한 선거자금만 12억2190만 달러, 한국 돈으로 1조4727억 원에 달한다.

◇돈의 전쟁, 미 대선…선거자금 규모가 후보 역량=24일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맞붙었던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선거에 사용된 비용은 총 23억8688만 달러다. 올 11월 대선에 투입될 비용은 이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대선후보들의 모금액 12억2190만 달러 중 트럼프 대통령이 2억1131만 달러로 후보자 중에서 가장 많은 선거자금을 모금했다. 트럼프 대통령 다음으로는 민주당 후보 중 투자회사 패럴론캐피털 창립자로 억만장자인 톰 스타이어 후보와 블룸버그 전 시장이 각각 2억629만 달러와 2억36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다만 스타이어 후보의 경우 선거 모금자금의 98.6%, 블룸버그 전 시장은 99.9%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민주당 경선에서 1위를 기록 중인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은 1억909만 달러를 모았다.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8199만 달러,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7678만 달러, 바이든 전 부통령은 6104만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른 에이미 클로버샤(미네소타) 상원의원은 2895만 달러를 모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기 돈을 투입한 스타이어 후보와 블룸버그 전 시장을 제외하면 모금액 순위가 경선 순위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지자들이 후보에게 적극적으로 자금을 내기 때문이다. 특히 신상 공개가 안 되는 200달러 미만 소액 기부금을 보면 후보자에 대한 지지층 두께를 알 수 있다. 열성 지지층을 거느린 샌더스 의원의 경우 선거자금의 55.8%가 소액 기부금에서 나왔다.

대선 후보들이 선거자금 모금에 집중하는 이유는 선거에 사용되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50개 주에서 2억 명이 넘는 유권자를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선거 캠프 직원 채용과 유지, 사무실 임차, 라디오·TV·인쇄 매체·인터넷 광고 등이 필요한데 상당한 비용을 쓸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지난 2일 미 슈퍼볼 경기 중계방송에서 60초에 1100만 달러나 나가는 광고를 내보냈고,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경기에 같은 액수의 광고로 맞불을 놨다.

이처럼 한 푼이 아쉬운 대선 후보들이지만 정부에서 주는 공공선거자금은 받지 않고 있다. 2008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공공선거자금을 받지 않고 선거를 치러 승리한 이후 대선 후보들은 공공선거자금을 수령하지 않는 추세다. 공공선거자금 규모가 후보들이 모금하는 액수에 못 미치는 데다 사용처가 제한돼 있어 선거를 치르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대선 승부를 가르는 경합주에서 승리하려면 막대한 광고와 유세 비용이 필요한데 공공선거자금에 발목이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정헌법 1조에 힘입어 선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외곽단체들=미 대선에 막대한 비용 사용이 가능한 이유는 선거 비용 사용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972년 제정된 연방선거운동법에는 후보자 선거 비용과 지출 제한 규정이 있었지만 1976년 버클리 대 발레오 판결에서 이 조항이 위헌으로 결론 나면서 선거 비용 사용에 제한이 없어졌다. 선거 비용 지출 제한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반한다는 이유에서다. 후보자들은 선거 자금 모금 방법·대상·금액은 제한을 받지만, 사용처는 FEC에 정확하게 신고만 하면 된다.

막대한 지출은 후보자나 정당 외의 관련 단체도 선거에 비용을 아끼지 않으면서 증폭된다. 미국 정치 자금은 후보자에게 직접 기부되는 ‘하드머니’(hard money)와 개인이나 단체가 받는 ‘소프트머니’(soft money)로 나뉜다. 미국은 1943년 스미스-코널리 법, 1946년 태프트-하틀리 법을 통해 연방 선거에 기업과 노조가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에 노조와 기업들은 정치활동위원회(PAC·팩)라는 단체를 만들고 정치자금을 걷어 정당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소프트머니는 후보가 아닌 정당 건설 활동에만 쓰도록 제한이 가해졌다. 이 때문에 미국 선거는 총기와 환경, 낙태 등 이슈 중심으로 흐르는 경향이 발생했다.

소프트머니는 기부액 상한선이 없다 보니 이후 기업체들의 로비 자금이 정치권에 들어가는 통로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또 개인 선거자금으로 유용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이에 미국은 2002년 매케인-파인골드법을 통해 소프트머니의 연방선거 사용을 금지하고 기부금 상한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2010년 연방대법원이 시티즌 유나이티드 대 FEC 판결로 ‘기업이나 노조 등 단체가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광고가 가능하다’라고 규정하면서 소프트머니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됐다. 역시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한 판결이었다. 이 판결을 통해 특별정치활동위원회(Super PAC·슈퍼팩)라는 단체가 허용됐고 선거에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팩과 슈퍼팩은 후보와 협의를 하지 않는다면 선거활동이나 정치 광고에 무제한으로 자금 사용이 가능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팩은 개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5000달러로 제한된 반면 슈퍼팩은 기부 모금액 상한선이 없다. 또 팩은 특정 후보에게 직접 정치 자금을 일정 한도 내에서 기부할 수 있지만 슈퍼팩은 후보에게 정치 자금을 전달할 수 없다. 이처럼 슈퍼팩은 후보에게 직접 기부할 수 없어도 기부 모금액 상한선이 없다 보니 막강한 자금력을 통해 외곽에서 대선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슈퍼팩은 대선 영향력만큼이나 문제점도 적지 않다. 슈퍼팩 대표를 후보자의 전직 보좌관이 맡는 경우가 잦아 또 하나의 선거캠프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슈퍼팩 기부자의 대다수가 부유층이라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러시아 자금이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돕는 ‘아메리카 퍼스트 액션’이라는 슈퍼팩에 유입된 사실이 드러나 선거 개입 논란이 일기도 했다. FEC에 따르면 팩과 슈퍼팩이 지난 한 해 동안 마련한 자금은 26억2595만 달러로 후보자들이 거둬들인 선거자금을 넘어섰다.

워싱턴=김석 특파원 su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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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기자

문화일보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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