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지난해 4월, 9월에 이어 오는 3월 2일 크네세트(의회) 총선거를 앞두고 있다. 앞선 선거에서 보수, 중도진영이 모두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1년 새 세 차례 총선을 치르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왕정·독재국가 일색인 중동에서 안정된 민주국가를 자부해 온 이스라엘로서는 낯뜨거운 상황이다. 특히 13년 넘게 역대 최장기간 재임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71) 총리는 지난해 11월 뇌물수수와 배임,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됐다. 현직 총리 기소 역시 역대 최초다. 네타냐후 총리와 지지자들은 기소 직후 “거짓 고발, 더러운 수사로 점철된 쿠데타 시도” “검찰 수사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 등 오히려 검찰·언론을 공격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한국 상황과 영락없이 오버랩된다. 네타냐후 총리를 기소한 아비차이 만델블리트 검찰총장이 총리의 측근 인사로 평가받았던 점도 흡사하다. 만델블리트 총장은 “누구도 법 위에 서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내 의무다. 증거를 철저히 검토한 결과 무거운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며 네타냐후 총리 기소를 발표했다. 3년여 수사 기간 동안 밝혀낸 범죄 혐의가 담긴 63페이지 분량의 공소장도 공개했다.
이후 상황 전개는 좀 다르다. 지난해 6월 임명된 여당 리쿠드당 출신 아미르 오하나 법무장관이 만델블리트 총장을 비판하고 검찰 후속 인사를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신 의회에 일시적 면책특권을 요구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그마저도 철회했다. 이스라엘 사법 당국은 네타냐후 총리의 첫 재판이 오는 3월 17일 열린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은 추미애 법무장관이 인사권을 휘둘러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사건 등을 수사해온 수사팀을 해체 수준으로 모두 교체했다. “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권리가 있을 것 같다”며 공소장 공개도 거부했다. 최근에는 검찰 힘 빼기 2라운드로 수사·기소 분리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이스라엘에는 한국에 없는 사법방해죄가 있는 만큼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직권남용 논란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미국에서는 연방 검찰총장을 겸하는 법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근에 대한 구형 깎기를 시도했다 전직 검사 및 법무부 관료 1100여 명이 사퇴를 촉구하는 ‘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시아대륙 양 극단에 위치한 이스라엘과 한국에서 비슷하지만 다르게 진행 중인 권력수사의 향배는 한 달여 간격으로 치러지는 총선 결과에 영향받을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 3월 총선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이 승리할 경우 다시 총리 후보로 지명된 뒤 재판받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현재까지 여론조사로는 승리 가능성이 낮지만, 만약 네타냐후 총리가 다시 총리가 될 경우 재임 기간 동안 면책 특권을 주는 법안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4월 15일 총선 결과가 관건이다. 여당이 승리하면 검찰개혁을 명분 삼아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추 장관의 행보에 힘이 실리지만, 반대 상황에서는 수사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사법부나 역사의 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많은 것이 걸린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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