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非인간의 기호과정도 思考… 인간처럼 주체를 가상 않을 뿐
(25) 에두아르도 콘(Eduardo Kohn, 1968∼)
‘사고는 인간전유물’서 탈피
동물도 생각하는 존재 간주
인간과 동등한 지위 부여해
대벌레 보호색, 도상으로 보고
생명, 주로 도상·지표 활용한
‘기호의 연쇄과정서 생존’ 주장
기호, 도상·상징·지표로 분류
기호학 적용범위, 숲으로 확장
◇ 펫팸족의 시대
“배가 난파됐다. 배 안에는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가 있다. 이 중 하나만 구조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 딜레마 앞에서 많은 이들은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늙고 병들었으며, 개는 어리고 팔팔한 강아지”라는 조건을 달면 어떨까? 내가 이 문제를 수업 시간에 던졌을 때 과반의 학생들이 개를 선택했고, 사람을 선택한 학생들도 대개 곧바로 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누군가가 가상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이 평소 그 사람의 가치관을 드러낸다면, 이 물음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사람과 개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과거만큼 비대칭적으로 판단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두 집 건너 한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 그 밖에도 다양한 부류의 비인간 동물들도 ‘반려’라는 이름 아래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데, 동물과 가족을 이룬다는 뜻에서 ‘펫팸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 기호학으로 바라본 숲의 생태계
비인간 동물은 어떻게 생각하고 소통할까? 개나 고양이와 오랫동안 같이 살아 본 사람이라면 개나 고양이도 자기 의사를 표현하며, 인간과 소통하고 생각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다만 인간과 같이 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하지 않을 뿐이다. 에콰도르 출신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은 대표작 ‘숲은 생각한다’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콘이 동물의 생각과 소통이라는 문제를 최초로 탐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연구가 참신한 이유는 비인간 동물의 의사소통과 사고 행위를 인간의 그것과 동일 선상에서 다루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비인간 동물에 대한 탐구는 ‘인간만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전제하에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특권적·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 반면에 콘은 비인간 동물을 지구상의 또 다른 생각하는 존재로 보고 이들에게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한다.
근대 세계에서 사고(思考)는 인간의 전유물이었다. 이와 같은 시각은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언어는 고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재현하거나 상상적으로 재구성하게 한다.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가 기호로서 결합시키는 것은 사물과 그에 대응하는 명칭이 아니라 개념(기의)과 청각 영상(기표)이다. 이것은 언어 기호가 사물들과의 자연적 관계에 기반하지 않으며 외부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이해하도록 해 주는 언어 관습 자체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요컨대 언어는 일종의 정신적 실체로서 외부 세계와 분리됨으로써 능력을 발휘한다.
소쉬르는 언어를 모든 기호 체계의 모범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콘이 아마존 숲에서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한 결과, 기호의 전형적 성격은 언어적인 것에 있다기보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비언어적인 것에 있다. 기호란 세계 속에 펼쳐지는 무언가를 나타내는데, 그러려면 기호를 해석하고 표상하는 해석자가 있어야 한다. 기호를 연쇄적으로 창출하는, 끝없는 추론 과정에 참여하는 해석자가 있을 때, 기호가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콘은 기호의 해석자가 인간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아마존의 다양한 생명체가 저마다 ‘자기(self)’로서 기호를 해석하는 것으로 보고, 이들이 어떻게 기호의 연쇄 과정으로서 ‘자기들의 생태계(ecology of selves)’를 엮어 나가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콘은 특히 프래그머티즘을 창시한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의 기호학에 입각해 기호를 도상(icon), 지표(index), 상징(symbol) 등 세 부류로 나누고, 관습에 의해 형성된 인간의 언어는 그중 상징에 불과하다고 논한다. 반면 비인간은 주로 도상과 지표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아마존의 대벌레는 주변 식물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보호색을 띤다. 콘은 도상이 닮음의 기호이듯이 대벌레의 보호색 또한 일종의 도상이라고 주장한다. 진드기가 사슴, 인간 등 낙산(酪酸)을 풍기는 종을 같은 항온 동물로 표상하는 것 또한 도상의 기호 작용에 따른 현상이다. 또한 아마존의 흰털원숭이는 자신이 올라앉은 나무의 흔들림을 곧이어 일어날 위험의 신호로 해석한다. 이때 나무의 흔들림은 원숭이에게 위험을 가리키는 지표로 표상된다. 이렇듯 대벌레, 진드기, 흰털원숭이 등은 모두 기호의 해석자이며, 이들의 생명 활동은 단순한 생리 작용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자기들의 생태계는 기호의 연쇄 과정 그 자체이며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명 활동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호는 인간의 언어에 한정되지 않으며 모든 생명체의 생명 활동으로 확장된다. 생명이 기호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 인간 아닌 생명체의 기호 과정도 사고인가?
인간과 사고의 관계는 20세기 유럽 사상사에서 주요 논쟁거리 중 하나로, 서구의 많은 사상가는 이 문제에 관해 서로 물고 물리는 논변을 펼쳐 왔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의 변증법적 이성이 세계 속에서 세계에 의해 자기를 구성해 나간다고 논했다. 그러자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사르트르를 비판하고 나섰다. 레비스트로스는 변증법적 이성이 자아와 타자 및 유럽과 비유럽을 대립시키는 유럽 중심주의, 나아가 인간과 세계를 대립시키는 인간 중심주의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후 레비스트로스 또한 자크 데리다에게 호된 비판을 받는다. 데리다는 레비스트로스를 겨냥해 구조주의가 유럽어로 구사되는 한 구조주의에 잠재된 유럽 중심주의의 망령을 쫓아내거나 인간 주체를 완전히 해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콘은 인간 주체와 숲의 사고 간 논쟁에서 레비스트로스의 편에 선 채 퍼스의 기호학을 통해 숲의 사고의 우위성을 설파한다. 퍼스에 따르면, 기호가 없다면 인간은 사고할 수 없다. 자아란 사고의 주체로서 기호의 연쇄 과정 그 자체이고, 사고는 종결 없는 추론을 통해 기호를 연쇄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하는 행위다. 퍼스의 관점은 내면의 성찰로 종결되는 코기토적 사고방식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며 사고가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 비인간으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퍼스는 비인간 생명체의 기호 과정을 논한 적이 없다. 콘은 바로 이 지점에서 퍼스의 기호학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를 아마존의 숲으로 확장해 비인간 생명체의 기호 과정 또한 사고임을 명시화한다.
◇ 숲의 사고, 인간의 사고를 넘어 되돌아오다
근대 이래 서구인들은 자연과 생명의 존재를 대상으로 바라봐 왔지만 일상에서 이들 존재와 마주치며 그들 또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 모순은 인간의 시각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하고, 여전히 야생의 숲으로부터 자성과 통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사고의 장으로서의 숲의 기호학에서, 자아의 사고는 각각의 신체에 국지화되지 않으며 신체 또한 인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숲의 기호학에 참여하는 모든 이는 신체를 넘어 확장될 수 있고, 이로써 서로의 관점을 교환할 수도 있다. 그런데 관점을 교환한다는 생각은 동아시아인들에게 어쩐지 낯설지 않다. 어쩌면 서구 근대인들이 주체의 철학을 넘어서서 대안의 철학으로 제시한 숲의 사고는 한반도에 뿌리내린 우리의 먼 조상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 수렵민의 사고방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차은정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공동기획 : 이감문해력연구소
■ 에두아르도 콘
분야 : 인류학-생태 인류학
사상 : 존재론적 전회, 포스트 휴먼 비평
주요 활동·사건 : 그레고리 베이트슨 도서상 수상(2014)
현재 캐나다 맥길대 인류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에콰도르의 아마존 네트워크를 이끌며 여러 원주민 운동가, 건축가, 변호사, 학자, 과학자, 예술가 등과 함께 아마존 숲을 연구해 오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시즘을 피해 에콰도르로 이주한 이탈리아계 유대인 3세로서 1968년 태어났다. 문학 애호가인 외조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유럽 고전 문학을 두루 섭렵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아마존 원주민의 비정부기구(NGO) 단체에서 활동하며 에콰도르의 아마존 지역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1996년부터 4년 동안 현지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2002년 위스콘신대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인류학계에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후 10여 년간 단 네 편의 논문을 제출했으며, 그중 2007년 논문 ‘개는 어떻게 꿈꾸는가’ 외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3년 ‘숲은 생각한다’를 발표하며 포스트 휴먼 인류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축으로 급부상했다. 이듬해 미국 인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인 그레고리 베이트슨 도서상을 수상했다. ‘숲은 생각한다’는 아마존 숲에서 원주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을 주의 깊게 관찰해 기술한 책으로, 지금까지 한국어(차은정 옮김, 사월의책, 2018)를 비롯한 아홉 개의 언어로 번역·출간됐다. ‘숲은 생각한다’는 저자의 생태학적 전문성 덕분에 가능했던 작업으로, 그는 코스타리카 열대학연구원에서 주관하는 열대 생태학 과정을 수료하고 다종다양한 생물종들의 표본을 직접 수집할 정도로 생태학에 박식하다. 특히 아마존에서 식물 표본 1100개 이상, 무척추동물 표본 400개 이상, 파충류 표본 90개 이상, 포유류 표본 60개 이상을 수집해 에콰도르 국립식물원에 기증하는 등 생태학 전문가로서 남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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