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중문화속 ‘라면의 사회학’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
세가족의 貧·富 관계성 상징
유재석 ‘인생라면’ 코너선
친근한 토크쇼 위한 매개체
영화 ‘기생충’의 성공과 함께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세계적 인기를 얻는 음식으로 등극했다. SNS상에는 자신만의 레시피로 만든 짜파구리가 넘쳐 난다. 그리고 눈을 돌려 TV를 트니 강호동과 유재석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왜 그들은 라면을 만들고, 또 먹을까?
◇서민, 짜파구리가 간직한 상징
‘기생충’의 연교(조여정 분)는 왜 굳이 “짜파구리를 만들어달라” 했을까? 이 상징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서민을 대변하는 라면을 상징적인 도구로 배치해 기택(송강호 분), 근세(박명훈 분) 그리고 연교 가족의 관계성을 설명했다는 해석이 있다. 기택 가족과 지하에 숨어 사는 근세 가족은 각각 짜파게티와 너구리고, 연교 가족은 그 위에 고명처럼 얹은 소고기 채끝살이라는 의견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듯 짜파게티와 너구리는 ‘짜파구리’로 잘 어우러질 만큼 비슷한 신세다. 그러나 기택은 오히려 닮은 결을 가진 근세를 무시하고 짜파구리 위의 채끝살처럼 이질감이 느껴지는 연교 가족의 삶을 좇다가 사달이 난다. 짜파구리가 연교 가족의 고달팠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스탤지어라는 분석도 있다. 힘들었을 때 먹었던 라면에 넉넉함의 상징인 소고기를 더해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라면은 이미 영화 속에서 서민을 대변하는 소품으로 여러 차례 쓰였다. ‘우아한 세계’(2007)에서 생활형 건달인 강인구는 혼자서 라면을 먹으며 가족이 보낸 비디오테이프를 보다가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밥상을 엎는다. 그리고 다시금 이를 치우기 위해 걸레를 든다. ‘선생 김봉두’(2003)와 ‘꽃피는 봄이 오면’(2004)에서는 선생님이 배고픈 학생을 위해 라면을 끓여 허기를 달래주는 장면이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라면 먹을래요?”라는 대사로 유명한 ‘봄날은 간다’(2001)에서 라면은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를 잇는 지극히 서민적인 오작교 역할을 한다. 이렇듯 라면은, 통상 누군가의 딱하거나 애틋한 사정을 드러낼 때 주로 쓰였다. 그리고 그 대상은 주로 서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1일 청와대의 초청을 받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제작진이 채끝살이 아닌 돼지 목살과 파를 곁들인 짜파구리를 대접받은 것은 현 정권의 ‘서민 지향’을 드러내는 ‘상징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왜 ‘국민 MC’들은 라면을 끓일까?
tvN과 올리브는 약 3개월에 걸쳐 강호동의 라면 ‘먹방’을 담은 ‘라끼남-라면 끼리는 남자’를 편성했다. 내용은 단순하다. 강호동이 삼겹살 파채라면, 조개라면, 대게라면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라면을 끓인 후 이를 먹음직스럽게 뚝딱 해치운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는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인 ‘유산슬’에 이어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으로 거듭났다. 그는 MBC 구내식당에서 라면 100인분을 끓이고, 자신을 찾아온 게스트들에게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을 대접하며 속내를 들어보는 ‘인생라면’을 진행했다.
대중의 마음을 잘 읽는 것으로 정평이 난 김태호·나영석 PD가 나란히 라면을 소재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놀면 뭐하니?’의 대화 속에 그 답이 숨어 있다. 김 PD의 요청으로 작은 분식집에 들른 유재석은 주인 할머니가 끓여주신 라면과 마주한다. 라면과 공깃밥까지 더해 3500원이라는 말에 유재석은 “남는 게 있냐”고 물었고, 사장님은 “남든지 안 남든지 하는 거야 할매는”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트로트로 서민의 애환을 달랬던 김 PD가 라면을 새로운 메타포로 삼은 셈이다.
이 대화에는 라면의 미학이 담겼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의 한 끼를 든든히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익숙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생충’의 인기에 강호동, 유재석이 출연하는 예능의 소재로 쓰이며 라면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며 “친숙하고 싸고, 누구나 좋아하며 쉽게 만들 수 있는 라면은 그동안 다양한 콘텐츠에서 주기적으로 쓰였다. 하지만 대표적 ‘서민 음식’을 국민 MC인 강호동, 유재석이 만들어 대접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배가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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