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중고차 시장의 경우, 파는 사람은 차의 성능을 속속들이 알지만 사는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해 ‘역(逆)선택’이 일어난다. 정보의 불균형이 심할수록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인은 계약에 충실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만이 가진 정보로 사익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의뢰인과 변호사, 주주와 경영자, 유권자와 정치인 간의 위임계약 관계에서 종종 역선택을 한다. 대리인들의 행동을 모두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주와 경영자·채권자·종업원 등 이해집단 간의 권한 위임이 복잡한 경영의 세계에서는 개인의 효용 극대화 행동을 인정한다. 대신 도덕적 해이로 인한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하는 게임의 룰을 만들었다. 주주총회와 회계감사, 스톡옵션 등의 감시와 보상체계는 모두 경영자의 일탈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래도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이 난제로 주주들의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 필요성이 커지면서 배당금이나 시세 차익뿐 아니라 부실경영의 책임 추궁, 구조조정, 경영 투명성 제고 등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나타난 주주(株主)행동주의의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주주행동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을 의미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의결권 행사를 넘어 투자 기업과의 소통으로 고객의 수익률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한진칼의 다음 달 주총을 앞두고 지난해 초 고 조양호 전 대한항공 회장의 경영권 박탈에 의결권을 행사해 논란을 일으켰던 국민연금은 또 고민에 빠졌다. 경영 참여를 선언한 사모펀드 KCGI가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대를 구성하면서 예측 불허의 상황이 됐다. 박빙의 승부에서 지분 2.9%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쥔 것이다. 소액주주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승부는 이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하는 주주행동주의와, 글로벌 항공사의 지속 경영을 표방하는 현재의 경영진 둘 중 하나의 선택으로 결정될 것이다. 주주권 행사 여부를 떠나 이번의 경영권 분쟁에는 몇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첫째, 항공은 이윤 추구에 앞서 국익(國益)과 공공성이 먼저다. 선진국들이 항공사의 파산 때마다 산업 내의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온 이유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파산한 TWA와 노스웨스트항공, 콘티넨털항공 등이 모두 자국의 항공사들에 인수돼 시장이 재편되는 동안 금융자본이 경영에 참여한 적은 없었다. 단기적인 투자 이익을 실현해 ‘먹튀’하는 사모펀드의 태생적 한계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둘째, 전문 경영인과 오너 경영인 체제의 상대적인 우위에 대한 판단이다. 전문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 해결도 관건이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그동안 비난받아 온 그룹 일가의 ‘갑질’에 대해 내놓은 쇄신안의 설득력이 핵심이다. 셋째,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 제안이다. 항공사는 경영 실적 못지않게 안전운항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경영권 다툼은 지금과 같은 최고 수준의 안전한 항공사 유지를 전제로 해야 한다. 수익성에 우선해 안전성이 저해되면 주주 권익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편익도 줄어들게 된다.

기업지배권 싸움으로 한진그룹의 기업가정신이 훼손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대한항공은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브랜드 가치를 쌓아온 우리 항공산업의 자존심이다. 지난 50년간 순항해 온 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도전과 응전에는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순기능도 있다. 도덕적 해이로 인한 역선택이 없는 주주들의 판단이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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