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네바다주 코커스를 사흘 앞둔 19일 TV 토론회에서 후보들은 자신이 더 나은 후보임을 알리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공방 와중에 한 후보자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트위터에는 106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 그들 중 99.9%는 예의 바른 사람이고, 일하는 사람들이며, 정의·열정·사랑을 믿는 사람들이다. 만약에 추악한 말을 하고, 노조 지도자들을 공격하는 몇몇이 있다면 나는 그들과 의절(disown)한다.”
민주당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의 말이다. 샌더스 의원은 극성 지지자들, 이른바 ‘팬덤’이 온라인상에서 다른 후보 진영에 가하는 공격적 행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의원은 역대 민주당 후보 중에서 가장 왼편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의 급진적 성향은 대선 공약인 전 국민 공영 의료보험(메디 케어 포 올)과 소득 상위 0.1%에 대한 부유세 신설, 1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 탕감 등에서 드러난다. 78세의 고령이지만 정치생활을 해온 40여 년간 이 급진 노선을 계속해서 걸어왔다. 그러한 정치인생 때문인지 민주당 후보 중 가장 열정적인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선거자금 모금액 1억909만 달러(2019년 말 기준) 중 55.8%가 200달러 이하 소액 기부가 차지할 정도로 광범위한 지지층을 자랑한다. 다만,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듯이 샌더스 의원의 극성 지지층은 다른 후보나 비판적인 이들에게 욕설이 담긴 트위터나 이메일, 문자 등을 보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진보단체인 워킹 패밀리 파티가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지지를 선언하자 비난을 가했고, 네바다주 요식노동조합 지도부가 메디 케어 포 올에 반대 의견을 표시하자 성·인종 차별적 이메일을 보냈다.
샌더스 의원의 TV 토론회 발언은 그동안 “모든 캠프의 지지자들이 왕따나 인신공격에 가담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던 물타기식 해명에서 더 나아간 ‘팬덤에 보낸 경고장’이다. 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이지만 급진 정책에다 극성 지지층 행태 탓에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지 못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샌더스 의원의 발언은 대선 승리를 위해 중도 확장성을 보이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국가 위기에도 극성 지지층을 통제하지 못하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 비하면 훨씬 더 리더다운 행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중국과 같은 3단계로 격상했다. 이런 상황에 문 대통령은 시장 상인을 향한 지지층의 공격에 “안타깝다”면서도 지지층을 겨냥한 발언은 아니라며 감싸고 돌고 있다. 한 나라를 이끄는 리더가 아니라 여전히 팬덤의 리더인 양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과 여당은 샌더스 의원으로부터 의절 발언을 끌어낸 워런 의원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지지자들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더 나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리더십이라는 건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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