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연 대한산업보건협회 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임진왜란의 여파와 함께 시작된 17세기는 병자호란까지 겹쳐 커다란 전란의 상처를 남겼다. 백성들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17세기 후반, 이상저온으로 인한 기근에다 그로 인해 허약해진 몸에 역병(감염병)까지 창궐했기 때문이다. 전쟁 못잖게 비참했고,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특히, 조선 전기에는 국지적으로 발생하던 감염병이 두 전란 후에는 전국적으로 발생해, 한성(서울)뿐만 아니라 궁궐까지 천연두 발생 가능 지역이 될 정도로 위태로웠다. 감염병 포비아다.

2011년에 개봉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은 공기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쓴다는 내용의 영화다. 주인공이 출장을 마치고 홍콩 공항에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도입부에 나온다. 카메라는 감염의 가장 직접적 경로인 사람의 손을 따라 움직인다. 맥주잔과 휴대전화 등을 만진 손으로 직원에게 신용카드를 건네고 직원은 결제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서 곧 증상이 나타났고 결국 그는 신종 감염병의 첫 사망자가 된다.

이 영화는, 가속화하는 세계화에 따라 국제사회가 질병 전파의 가능성이 전례 없이 커진 시대를 맞게 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는 국지적 유행으로 끝났을 질병들이 이제는 단시간에 전 세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지난 23일 정부는 코로나19에 대한 위기경보를 최고 등급인 ‘심각단계’로 발표했다. 지금까지 환자를 격리해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의료 시스템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지역사회에 노출된 지금, 기존의 의료 시스템은 코로나19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염 경증환자가 검사를 받기 위해 응급실에 몰려 중증환자 진료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 벌어진다. 환자들이 지역사회감염에 노출된 상황이라 얼마간은 날이 갈수록 확진 환자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삶의 기반인 직장에서도 감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단순히 사망자 수를 넘어 국경 통제 및 무역, 교통 등 경제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차 보건의료 체계는 이미 사업장에 잘 정비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정해진 보건관리 제도다. 다만, 이 제도는 질병이 아닌, 건강이 초점이다. 보건의료인으로 구성된 그룹이 한 환자를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업장 주치의 제도를 말한다.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감염병 확산 감소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예방과 건강 증진이 중심인 1차 보건의료 체제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 사태에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 대책인 개인 보호구(보건용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의 매점매석이 이뤄지고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메르스에 효과’ 등 허위 광고로 일부 식품업체 등이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공포·불확실성·의혹을 조장하는 공포 마케팅을 하다가 불안감만 조성하고 해답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기업은 공공의 적(敵)으로 낙인 찍혀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1000명에 육박하고 사망자만 10명이 발생한 지금 일반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주장에 대해 적극 해명함으로써 피해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또, 산업보건 전문가들은 사업장 내 근로자들의 감염 확산을 차단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