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대선에 또다시 등장한 ‘러시아 변수’

바이든 “러,트럼프 재선 도우려
상대적으로 쉬운 샌더스 지원”
블룸버그도 “러 개입설” 가세
트럼프, 샌더스 급진성향 부각
샌더스 “푸틴은 독재자” 선긋기

정치인들이 여기저기 ‘살’붙여
구체적 근거없이 의혹만 난무
대선 ‘유리한 고지’ 선점위해
후보들 ‘머리싸움’ 더욱 치열


미국 대선 때마다 어김없이 러시아 개입설이 단골메뉴처럼 등장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대선 때의 논란이 아직도 정리 중인 상황인데 2020년 한창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 경선에서 또다시 핫이슈가 됐다. 간단히 줄이면, 러시아가 지난 대선 때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돕기 위해 여론조작 수법으로 버니 샌더스(무소속·버몬트) 상원의원을 지지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러시아가 올해 미 대선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면서 충격파는 더 증폭하는 기류다. 특히 정치인들이 여기저기 살을 붙이며 확성기 역할을 한다. 명쾌한 근거도 없이 의혹만 난무하는 일종의 색깔론 양상으로 전개되는 터라 슈퍼화요일(3월 3일)의 진검승부가 끝난 뒤에도 대선 본선까지 치열한 공방이 지속할 전망이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움직임과 정치권 머리싸움 = 민주당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닷새 앞둔 지난 2월 24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찰스턴에서 열린 모금행사에서 “러시아가 샌더스 의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게 (트럼프) 대통령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며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은 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오는 11월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돕기 위해 상대적으로 이기기 쉬운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 후보가 되도록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 시도 주장은 지난달 13일 정보당국의 하원 정보위원회 브리핑에서 제기됐다. 당시 브리핑에서는 러시아가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 의원을 지원하는 상황이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보당국의 보고로 미 대선에 러시아 변수가 추가되면서 대선을 둘러싼 각 진영의 계산이 복잡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막는 방안 마련에 더해 러시아 변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머리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겉과 속의 반응과 전략이 다르다. 민주당 지도부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러시아의 선거 개입에 강한 대처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체적으로 지난 대선 때 러시아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를 해킹하고 자료를 유출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타격을 가했던 일과 비슷한 상황이 이번 대선에도 재연될까 우려하고 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당시 개인 이메일로 국무부 업무를 봐온 일이 드러나면서 대선 가도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민주당 경선후보들은 반응과 활용 전략 측면에서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 중도파 후보들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자칭하는 샌더스 의원의 경선 독주를 막는 데 러시아 선거 개입을 활용하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에 이어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샌더스 의원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의문에 러시아의 샌더스 지원설을 들고 나섰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지난달 25일 민주당 후보 토론회에서 샌더스 의원을 향해 “러시아가 당신을 돕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 것”이라고 공격했다.

지난 대선 때 러시아와의 유착설,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로 인해 특별검사 수사를 받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브리핑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교체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 개입설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역시 대선에 유리한 방법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러시아가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 의원을 돕고 있다는 보고를 정보당국이 했는지에 대해 “아무도 내게 그런 얘길 하지 않았다. 누구도 내게 그런 보고를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덤 시프(하원 정보위원장)와 그 무리가 언론에 흘린 거다. 시프는 그 정보를 흘린 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그들은 샌더스가 그들을 대표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선거 개입 문제로 다시 한 번 대통령직에 위태로운 상황을 맞지 않으려 방어막을 치는 동시에 민주당 진보파와 중도파 간 내분을 심화시키려는 전략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지원설을 계기로 샌더스 의원의 사회주의 성향을 부각해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샌더스 의원이 버몬트주 벌링턴시장으로 재임하던 1988년 6월에 갓 결혼한 아내 제인 등과 함께 옛 소련을 찾았던 일을 겨냥해 “누가 모스크바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지?”라고 공격했다.

샌더스 의원은 러시아 개입설로 발생할지 모를 유착 의혹과 본선 경쟁력 의문을 불식하는 데 주력했다. 샌더스 의원은 성명을 통해 “한 달 전에 미 관리들로부터 러시아의 지원설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며 “트럼프와는 달리 나는 푸틴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반대파를 억누르고 민주주의 파괴를 시도하는 독재자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을 향해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 말을 믿어도 된다. 당신은 미국의 선거에 개입하지 못할 거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배경과 방법 = 러시아가 2020년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는 그들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굴하지 않고 2020년 선거 개입을 위해 준비하고 실험해왔다”며 “탐지당하지 않을 방법의 새로운 각본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러시아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2016년 때처럼 미국인을 가장해 정보를 올리기보다 거짓 정보를 미국인에게 반복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또 정보기관의 경우 미국 내 수사가 금지되고,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국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악용해 해외가 아닌 미국 내 서버를 운용하고 있다. 이란에서 사이버 공격이 온 것처럼 보이도록 이란 사이버 전투부대에 침투하는 방법도 사용 중이다. 아울러 미국 투표 시스템을 손상시키기 위한 랜섬웨어 공격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 수법은 어느 정도 드러나 있다. 2016년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검이 내놓은 보고서와 기소장을 보면 러시아는 2014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운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 등을 이용해 미국 내 여론조작을 벌여왔다. 러시아가 2014년부터 댓글 부대 등을 이용해 선거 개입에 나선 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라인을 붕괴시키기 위한 일환이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부와 친러 반군 간 내전을 틈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이에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러시아의 대선개입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등에 반감을 표시해온 미국과 유럽의 극우파를 선거에서 승리하게 하려는 데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는 동맹을 중시하고 러시아를 견제하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낙마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 경선 때는 샌더스 의원을, 본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댓글을 올렸다. 뮬러 특검 보고서에 따르면 IRA는 조직원들에게 보낸 명령서에서 “힐러리를 비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회라도 활용하라. 샌더스와 트럼프는 제외한다. 우리는 그들을 지지한다”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샌더스 의원이라는 우파와 좌파 이단아가 미국의 가치와 시스템을 흔들어 국론 분열을 일으키리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후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상당한 이득을 거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우크라이나에 민주당 대선 후보인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며 군사 지원을 보류했다. 또 나토 등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과 시리아 철군 지시 등으로 미국에 대한 동맹국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워싱턴=김석 특파원 su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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