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우 티 루(1947∼2004)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신 어머니는 베트남전쟁에 참가하셨고 거기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전쟁 후 두 분은 고향으로 돌아와 가정을 꾸렸고 언니 3명과 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쟁 후유증으로 제가 3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고 어머니 또한 병마에 시달렸습니다. 세 명의 언니들은 어려서부터 치료비와 막냇동생 양육을 위해 일을 했지만 늘 빚과 이자에 허덕였고 부채를 갚기 위해 학교를 포기하고 하노이로 떠났습니다.

그 뒤 저는 아픈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습니다. 저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채석장에서 돌 나르는 일을 했는데 한국 돈으로 하루 300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제가 15살 되던 해 어머니는 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최대 두 달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 자매는 서로 울기만 했고 엄마에게 거짓말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괜찮다. 편히 쉬었다”고 말했습니다. 암세포가 몸 전체에 퍼져 진통제를 복용했지만, 우리가 걱정할까 봐 신음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도 고향을 떠나 언니 집에서 살았고 대학교 졸업 후 작년까지 유치원 교사로 일했습니다.

작년 저는 인생에서 큰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우연히 지금의 남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6개월의 연애 기간 우리 부부는 베트남과 한국을 몇 번씩 방문했고 저는 남편과 대화를 더 잘하기 위해 한국어학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언니들은 막냇동생이 가족도, 친구도 없는 먼 곳으로 시집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저 또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제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저는 남편과 잘살고 있는 모습을 언니들에게 영상통화로 보여줍니다. 서툴지만 김치찌개도 만들어 저녁을 같이 먹습니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 1월에는 생전 처음으로 눈을 봤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은 신비롭고 아름다웠습니다. 눈 내리는 하늘 위로 엄마가 저를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엄마 저 보고 계시지요?

막내딸 프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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