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누군가가 물어온다면 다급한 것부터 떠올리게 된다. 요즘 같으면 ‘마스크’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을 빼고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질문한다면 대답의 폭이 좀 넓어진다. 그림책 ‘이 선이 필요할까?’는 어린이가 바닥에 주르르 떨어져 있는 선을 집어 들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묻는다. “우리에게 이 선이 필요할까?”
책의 첫 장면을 보면 형제가 놀고 있고 둘 사이에는 초록색 선이 놓여 있다. 동생은 형에게 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누가 언제부터 이 선을 그어놓았을까. 동생도 형도 잘 모른다. 이 선은 뭘까 궁금한 마음이 든다. 그 선을 따라가기로 결정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평범한 초록색 선은 다정했던 두 아이를 갈라놓는 경계선이 되기도 하고 한 아이만 고립시키는 둥근 감옥이 되기도 한다. 배낭을 짊어진 채 뒤엉킨 앞날의 선 꾸러미 위에 서서 어쩔 줄 모르는 젊은이도 있다. 어른들의 갈등에서 파생된 헝클어진 선이 아이마저도 옭아매어 버린 가족, 자기중심으로만 선을 둘러치고 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나 세상의 선은 하나가 아니다. 초록색 선에 이어 노랑, 파랑, 빨강 선이 나타나고 그 선들은 엇갈리면서도 동그라미로 어우러져 나아간다. 대립선 위에 있던 사람들도 영원히 평행선을 긋지는 않는다. 한바탕 논쟁을 벌이면서 제3의, 제4의 대안적 선을 찾아 나아간다. 아이는 어지럽기만 한 선을 초록 실타래 모양으로 둥글게 감으면서 꾸준히 걷는다. 적대적 전쟁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넘고 철통같은 국경선을 지나 대륙 반대편 끝에 사는 어느 할머니와 마주친다. 그동안 이 할머니도 수많은 분열의 선을 하나의 타래로 감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으로 연결돼 살아오고 있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계와 개인, 국가와 또 다른 국가는 촘촘히 닿아 있다. 위기 상황이 되면서 혐오와 배제의 선도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가시를 세워 선을 긋고 이웃을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이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요한 선과 필요하지 않은 선을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16년 볼로냐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던 최은영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산뜻한 이미지로 설득해내는 시의적절한 그림책이다. 52쪽, 1만4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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