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복희 ‘여러분’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그리움은 남는 것’(이은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중).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도 추억은 호수처럼 고인다. ‘우정의 무대’(MBC)를 연출한 게 30년 전인데 아직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장교와 부사관, 사병이 아니다. 일기장에다 이 모임의 이름을 ‘무사우영’으로 적어뒀는데 풀이하면 이렇다. ‘무대는 사라져도 우정은 영원하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사진 꺼내놓고/엄마 얼굴 보고나면 눈물이 납니다’(작은별 가족 ‘그리운 어머니’ 중). 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면 마흔 고개를 넘었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한다. 아들이 아닌데도 무대로 달려 나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외쳤던 그 ‘거짓말쟁이’ 청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대국민사기극’을 벌인 게 아니다.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백한 것이기에 무죄다. 음악이 흐르면 병사들의 눈에 물기가 맺히던 장면이 카메라에 수없이 잡혔다. 사전에 부탁한 것도 아니고 연습한 것도 아니다. 자막 한 줄 없어도 감동은 넘쳤다. 단 한 명의 ‘정직한’ 병사가 어머니를 업고 휴가를 떠날 때 시청률도 정점을 찍었다.

장병들 없는 ‘우정의 무대’를 상상할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경기장에서 관중을 밀어내더니 음악동네에도 영향을 미쳐 급기야 관객 없는 ‘미스터 트롯’(TV조선)을 예고했다. 박수는 저장된 걸 꺼내 쓸 수 있지만 팬들의 표정은 빌려올 수 없다. 관객이 실종된 무대를 보면서 시청자는 허전함을 느낄 게 분명하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객석이 비니 무대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등장하는 사례도 생겼다. ‘유희열의 스케치북’(KBS 2TV)에는 잔나비의 매니저(최정준)가 등장했다. 밴드의 보컬 겸 리더 최정훈의 친형이다. ‘전지적 참견 시점’(MBC)에 비친 매니저들의 일면은 다정다감해 보여도 실제의 삶은 다사다난하다. 어찌 보면 극한직업이다.

가수와 매니저의 관계를 의상에 빗댄 적이 있다. 몸 가는 곳에 옷도 간다. 동고동락의 공동운명체다. 그러니 서로 맞아야 한다. 가수의 사이즈에 비해 매니저의 존재감이 너무 커도 곤란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가수를 날게 해주는 매니저가 최고다. 그래서 눈치보다는 코치가 중요하다. 연예 정글에선 인생의 코치가 가수를 지켜줘야 한다.

방송사에 다닐 때 지켜봤다. 매니저를 잘못 만나 사라진 가수도 있고 가수를 잘못 만나 쓰러진 매니저도 있다. 잔나비나 이은하(이중구 매니저)처럼 형제나 남매인 경우도 애로사항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계약서가 중요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것보다 글 한 줄로 천 냥 빚이 안 생기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그까짓 것 미련이야 버리면 그만인 것을/끈끈한 정 때문에 정 때문에/괴로워 혼자 울고 있어요’(송대관 ‘정 때문에’). 이별의 사연은 정 때문이 아니라 대체로 돈 때문이다. ‘한번 씹고 버리고/두 번 씹고 버리고/단물 빠지면 버리는/요즘 세상 사람들’(성도현 ‘껌’ 중).

음악이 생명이라면 매니저나 팬은 생명 줄과 비슷하다. 윤복희(사진)는 지켜보는 사람보다 지켜주는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노래한다.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중략)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왜 지켜야 하는지, 무엇부터 지킬 것인지 그들은 안다. 영화 ‘보디가드’(1992)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무엇 때문에 휘트니 휴스턴을 지켰는가. ‘삶이 그대에게 친절하길 바라고/그대가 꿈꾸는 모든 것들이 이뤄지길 원하죠’(‘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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