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극도의 카오스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확진자 수가 가장 많고 이에 따라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공적 방역망이 뚫리면서 마스크든 세정제든 사회적 격리든 이제 개인적 방어벽을 구축해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그러니 사회 전반에 걸쳐 심리적 불안감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2월 25∼28일 사이에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위험인식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관련 뉴스나 정보를 접할 때 국민이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 48.8%로 가장 많았다. 그야말로 ‘불안 사회(insecure society)’다.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일상이 이젠 다 불안하다. 악수는 물론이거니와 문고리를 잡을 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수다를 떠는 친구의 입술이 언젠가부터 바이러스 분사기로 보이고, 전철 안 승객의 기침 소리는 그야말로 산탄총을 쏴대는 것 같다. 반대로,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재채기라도 나올 것 같으면 의장대의 기수처럼 어떡하든 참아내야 한다.

TV에선 온종일 코로나19 관련 뉴스로 들끓는다. 단톡방에는 계속해서 관련 문자들 때문에 알림음이 속사포처럼 울린다. 모두들 어디서 얻은 것인지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퍼 나른다. ‘뜨거운 물을 마시고 비타민C를 섭취해라’부터 ‘확진자가 어느 식당에 다녀갔다’더라까지, 정보의 확산 속도가 바이러스 못지않게 빠르다. 그중 먼저 보낸 문자가 사실이 아니라는 정정 문자가 반 정도를 차지한다. 다들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상의 삶이 이러니 날이 갈수록 피로가 누적된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의 본성을 조금씩 자극하기 시작한다. SNS에서만 사회적 교류를 유지한 채 오프라인의 관계망은 가족 단위로 급속히 축소됐다. 심지어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택한다. 처음엔 좋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기 싫던 직장’이 그리워진다. 동료들과 부대끼고 점심 먹으며 상사 욕하던 그 직장이 몹시 그리워진다. 이 무슨 반전인가?

같은 통제라도 스스로 하는 통제(self control)와 타인에 의해 강요된 통제(external control)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큰 차이가 있다. 밸푸어 제프리는 20주 동안 자발적 다이어트를 유도한 그룹과 강제적으로 다이어트를 한 그룹으로 나누어 그 효과를 관찰했다. 실제 체중감량 결과는 비슷했지만, 지속성 면에서 자발적 통제를 한 그룹이 더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재택근무를 포함한 사회적 격리나 거리 두기 역시 마찬가지다. 원하지 않은 통제를 받게 된 것이기에 감금과 다름없다. 자신이 원한 게 아니라 타인의 통제 아래서의 이뤄졌기에 고통이다.

장기화하는 사회적 격리를 견디기 위해서는 타인의 통제를 셀프 통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집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 아니 매일 북적이는 지하철에서 탈출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집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보자. 배우자나 자녀와 그동안 하지 못한 얘기도 나누고, 같이 음식도 만들어 먹는 행복을 가져 보자. 혼자 음악도 듣고 책이나 영화도 보면서 계획을 짜고 스스로 즐겨 보자. 이번 기회에 타인과의 만남으로 빼앗겼던 나만의 시간을 찾아보는 것, ‘나에게로의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 모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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