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신창섭 기자, 그래픽 = 조연수 기자
사진 = 신창섭 기자, 그래픽 = 조연수 기자


⑨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기준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
기대수명 66.1세 시절 만들어
현재 82.6세로 16.5세 늘어나

작년 무임수송 2억7384만 명
전체 승객의 15%로 3709억원
무임승차 82.2%가 65세 이상
선진국은 소득 따라 탄력 적용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에서 만난 김모(여·65) 씨는 “올 초부터 지하철을 무료로 타고 있다”며 “공짜라 좋긴 한데, ‘내가 벌써 공짜로 지하철을 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노약자석에는 앉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난 노인이라고 말하기에 아직 젊어 노약자석은 피한다”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지하철 무료 탑승 기준연령을 2∼3세 정도는 올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현역에서 만난 김지현(여·29) 씨는 최소한의 무임승차 ‘허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소득 기준, 무임승차 가능 시간대를 정해 제한적으로 무료 혜택을 줘야 한다”며 “나이 기준으로 단순하게 무임승차 대상을 정해, 일괄적으로 혜택을 주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젊은 세대에게 불공정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유지’ 주장도 많았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박모(65) 씨는 “다른 복지 혜택은 줄여도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은 줄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가난하더라도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씨는 “나이 드는 것은 서럽지만, 그래도 지하철 무료 혜택을 받아 기쁜 마음이 든다”며 “만약 혜택 축소를 검토하면, 노인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더 거셀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른바 ‘지공거사’(地空居士·지하철 무임승차 노인)를 늘리는 만 65세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특히 젊은 층에서 소득 기준, 무임승차 시간대 등을 정하지 않은 채 무차별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대수명은 늘고 노인 기준은 40년째 동일 = 65세를 노인으로 규정한 노인복지법은 1981년 제정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40년째 같은 기준이 지하철 무료 혜택 등 복지 혜택의 기준점이 되는 것이다. 1981년 당시 기대 수명은 66.1세였지만, 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현재는 82.6세(2017년 기준)가 됐다. 36년 전보다 기대수명이 16.5세 늘어난 것이다. 노인들 역시 노인 기준연령을 70세 이상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65세 이상 서울 시민 3034명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연령은 평균 72.5세였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최대 70세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 사이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지하철 1∼8호선 무임 수송 인원은 2억7384만 명으로, 전년(2억6104만 명) 대비 1280만 명 늘며 전체 승차 인원 중 15.5%를 차지했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3709억 원에 달한다. 무임 승차자의 82.2%는 65세 이상 노인으로 하루 평균 61만7000명에 달했다. 서울시가 추산한 올해 예상 손실액은 4134억 원이다.

이와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은 노인 등의 지하철 무임승차 손실액을 전액 국비에서 메워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노인들의 무임승차 비용을 결국 젊은 층이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오산시에 사는 대기업 사원 최모(38) 씨는 “결국 일반 요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노인들의 무료 승차 비용을 충당하지 않겠느냐”며 “이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3월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7명(응답률 8.4%·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포인트)을 대상으로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기준을 기존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 67.9%, 반대 27.8%로 나타났다.

◇“기본 복지 혜택 박탈은 불공정”= 혜택 당사자인 노인들은 적극 반대 의견을 낸다. 가장 기본적인 교통수단인 지하철을 원활하게 탈 권리를 제약하는 게 옳지 않다는 논리다. 그 근거로 사용되는 게 노인빈곤율이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2.5%)보다 3.7배 정도로 높다. 특히 은퇴 이후에도 자녀 교육과 결혼 등에 얼마 없는 경제력을 투입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사를 하다 퇴직한 손모(여·65) 씨는 “종일 손주들 돌보고 연금 일부도 애들 생활비로 준다”며 “사실상 가처분소득이 없는데, 계속 제공하던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까지 끊으면 화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공거사’가 돼 노인들이 여러 곳을 다니며 운동을 함으로써 복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하철 무료 혜택으로 노인들의 사회적 활동이 많아져 건강이 증진돼 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정모(70) 씨는 “지하철 무료 혜택으로 65세 이상 노인들이 이곳저곳 다니게 돼 의도치 않게 운동을 하는 효과가 발생한다”며 “운동을 하면 노인들이 건강해지는 것이고, 이는 의료비용 등 사회적 복지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노인들 사이에서는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기준이 상향되면 다른 각종 복지 혜택 기준도 연쇄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65세 노인연령을 각종 노인 복지 정책의 기준 연령으로 삼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부터 기초 연금, 장기요양보험, 노인 일자리 사업, 노인 돌봄 서비스 등이 모두 이 기준을 따른다. 이와 관련,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임승차 일부 제한 기준 마련 필요 = 전문가들은 초고령 사회에 대비해 노인연령 상향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인들의 저항이 있겠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노인 복지 혜택 기준에 대한 단계적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하철 무임승차의 경우 당장 혜택 연령 상향을 못 하더라도 △소득 기준 추가 △출퇴근 시간대는 무임승차가 아닌 할인 혜택 적용 △최소 자기부담금 납부 후 연간 무임승차권 제공 등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실제 프랑스는 65세 이상 시민 중 월 소득이 2200유로(약 290만 원·1인가구 기준) 이하인 사람에게 대중교통 무료 탑승 혜택을 준다. 일본 도쿄(東京)는 70세 이상 시민에게 무임승차 혜택을 주지만, 소득을 따져 무임승차 카드(실버 패스) 발급 부담금을 받는다. 일본 오사카(大阪)도 자기부담금 3000엔(약 3만 원)을 낸 사람에게 1회 탑승 비용 50엔(550원)을 받는다. 호주는 출퇴근 시간대에 무임승차자에게 할인을 덜 해주는 방식의 정책을 펴고 있다.

손기은 기자, 장은현·조윤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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