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관심 가지며 사상 발전
지구·지동설 설명하려던 뉴턴
과학법칙 발견해 물리학 완성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너무나도 익숙한 훈민정음의 첫 번째 문장이다. 필자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듕귁’, 즉 ‘중국’이란 말에서 뭔가 걸리는 걸 느끼곤 했다. 왜 “나랏말싸미 ‘명국’에 달아”라고 하지 않고 굳이 ‘중국’이라고 썼을까? 이 궁금증은 조선 초기에 제작된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보고 어느 정도 풀리게 됐다. 문자 기록보다 지도나 그림이 한 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을 주는 것 같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시간 될 때 참조해 보기 바란다. 이 지도에 따르면 네모난 모양의 땅에 중국이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한반도는 동편에 위치해 있다. 한반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으며 실제보다 중국과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본이 한반도보다 작게 그려져 있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지도에는 자연환경에 대한 당대의 인식이 반영돼 있기 마련이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도 당대를 지배하던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한 사각형이라는 자연환경 인식이 전제돼 있다. 이러한 천원지방적 자연 인식에서 가운데 위치한 나라는 영원히 가운데 나라며 주변에 위치한 나라는 영원히 주변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시대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이런 태생적 한계를 한반도를 실제보다 크게 그림으로써 위안받고 싶었던 것일까?
유럽과 서아시아에서는 땅의 모양이 구형이라는 인식이 식자들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달의 어두운 부분이 바로 지구의 그림자라고 주장했다. 해양을 통한 문화 교류가 빈번했던 유럽과 대륙 중심이었던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의 차이였을까? 우리나라에서 드넓은 만주 벌판을 누비는 상상이 풍부한 데 반해 바다를 누비는 상상이 부족한 것도 혹시 그 때문은 아닐까? 천원지방적 세계관이 자연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건 당대에도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땅에 대한 인식은 정치 및 국제질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의문 대부분은 억압돼 버렸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참고 자료였던 아라비아계 지도는 땅이 구형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제작된 것이었지만 조선으로 건너오면서 땅은 평평하고 사각형이라는 인식의 틀에 맞추어져 다시 그려졌다.
이 코너의 제목인 ‘지구문답’의 전거가 된 철학 소설 ‘의산문답’의 저자인 담헌 홍대용 역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인식에 갇혀 있던 조선 후기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오랑캐라고만 생각했던 청나라 선비와의 교류는 홍대용의 세계관에 균열을 일으켰고 ‘의산문답’은 그 충격에 대한 기술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홍대용은 왜 ‘의산문답’에서 지구의 문제에 주목하게 됐을까? 그것은 지구의 문제가 인간 존재의 기반에 대한 심층적 물음과 직결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산문답’에서 비롯된 지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혜강 최한기까지 이어지는 조선 후기 사상사의 한 지류를 형성하게 된다.
유럽의 과학 혁명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구에 대한 인식과 깊게 연관돼 있다. 과학 혁명의 완성인 뉴턴의 물리학은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에 대한 체계적이고 일관된 설명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동설을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과학 법칙의 발견을 낳았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원지방적 세계관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아직도 허다한 것 같다.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 지구에 대한 문제를 던져 봄으로써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구는 물론, 주변 행성과 별에 관한 이야기들로 이 코너를 채워갈 계획이다.
연세대 지질학과 학사·석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 현재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남극 중앙 해령을 탐사, 연구하고 있다. 전문분야는 암석 지구화학, 맨틀 지구화학, 판 구조론, 고체 지구의 지화학적 순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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