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4명의 신원 찾아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불과 2주일 앞두고 중공군과의 마지막 혈투에서 진지를 사수하다가 개인호 전투 등에서 전사한 국군 2사단 31연대 소속 장병 4명의 유해가 사후 67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허욱구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단장은 9일 “지난해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 중 국군 전사자 4명의 신원이 올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4명의 전사자는 고 정영진 하사(139번째), 고 임병호 일등중사(140번째), 고 서영석 이등중사(141번째), 고 김진구 하사(142번째) 등이다. 허 단장은 “신원이 확인된 고인들은 모두 제2사단 31연대 소속으로, 정전협상 진행 기간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1953년 7월 10·13일 각각 전사했다”며 “유골 상당수는 개인호에서 부분 유해 및 골절된 상태로 발굴된 점으로 볼 때, 마지막 순간까지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진지를 사수하던 중 적의 포탄 공격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고인들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던 수통과 탄약, 인식표, 계급장, 기장증, 대검, 전투화, 철모 등 다수의 유품이 발굴됐다.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는 철원 북방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 2사단이 중공군 23군 예하 73사단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전개한 전투다. 당시 국군은 전사 212명, 실종 16명의 피해를 보았다.
허 단장은 “고인들은 스무 살 청춘의 나이에 국가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 하나만을 가지고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남겨둔 채 참전했다”고 말했다. 특히 정 하사와 임 일등중사, 김 하사 등 3명은 이미 결혼한 상태로 슬하에 어린 자녀 1명씩을 남기고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고인의 아내와 자녀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편과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 김 하사의 부인 이분애(90) 씨는 “남편의 시신을 못 찾아서 무덤이 없으니까 내가 죽거든 선산에 묻지 말고 뿌려달라고 말해왔을 정도로 오랜 세월 가슴 아파하며 살았는데 남편을 찾게 돼 앞으로 같이 묻힐 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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