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세베 바예스테로스는 정석 스윙이 아닌 변칙 스윙으로 ‘이방인들의 미국 침공’의 선두주자로 군림했다.
스페인의 세베 바예스테로스는 정석 스윙이 아닌 변칙 스윙으로 ‘이방인들의 미국 침공’의 선두주자로 군림했다.
4R 쌀쌀한 날씨에도 완벽샷
우승 후보 어윈 가볍게 제압

이듬해 ‘마스터스’까지 우승
‘이방인의 美 침공’ 선두주자


영국에서 19세기 말 미국으로 건너간 프로골프는 190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국 주도하에 미국 선수들이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198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유럽 등 미국 국적이 아닌 선수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승과 함께 상위 그룹에 오르면서 주류로 자리잡아갔다. 미국 골프계는 이런 현상을 ‘이방인들의 미국 침공’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그 첫 주자가 스페인 출신의 세베 바예스테로스였다. 1979년 홀연히 나타난 그는 ‘유럽 이방인’의 선두주자였다.

1979년 영국 잉글랜드 서쪽 랭커스터 바닷가에 있는 로열 리덤 & 세인트앤스. 그해 7월 18일 108회 디오픈이 열렸다. 당시만 해도 디오픈은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4일간 치러졌지만, 이듬해인 1980년부터는 지금처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로 바뀌게 된다. 1886년에 만들어진 이 골프장은 전형적인 링크스 코스였다. 아일랜드 바닷가를 마주한 이곳 날씨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해 선수들을 괴롭혀 악명 높은 코스 중 한 곳으로 꼽혔다.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1926년 디오픈에서 미국의 보비 존스가 우승한 이래 50년 넘게 미국 선수들이 이곳에서 우승을 한 적이 없었다. 헤일 어윈, 잭 니클라우스, 톰 왓슨, 조니 밀러, 벤 크렌쇼 등 미국의 톱 클래스들이 대거 선두그룹에 포진해 우승 분위기를 조성해갔다. 3라운드까지 성적은 어윈이 211타로 단독선두였다. 바예스테로스가 2타 차로 추격했다. 1974년 US오픈 챔피언에 올랐던 어윈은 이 대회 직전 열린 US오픈 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었고,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반면 바예스테로스는 프로 3년 차인 22세 신예였다.

스웨터를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한 날씨 탓이었을까. 4라운드가 시작하면서부터 참가자 모두 오버파를 기록하며 속절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바예스테로스만 예외였다. 그 역시 드라이버를 페어웨이에 올린 적이 없을 정도로 변덕스러운 날씨에 고생했다. 하지만 그린에서 마무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3번 홀에서는 티샷을 러프로 보내고 가까스로 그린에 올렸지만 8m 퍼트를 넣어 버디를 잡아냈다. 16번 홀에서는 티샷을 주차구역으로 날린 뒤 무벌타 드롭 끝에 그린에 올려 다시 버디를 잡는 등 ‘원맨쇼’를 펼치면서 우승했다. 바예스테로스와 달리 어윈은 컨디션 난조로 75타에 그쳤고, 크렌쇼 역시 71타를 쳐 3타 뒤진 2위에 만족했다. 22세에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른 바예스테로스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 출신으로는 1907년 프랑스의 아르나드 매시 이후 72년 만에 디오픈 챔피언이 됐다. 그는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머뭇거리지 않는 빠른 스윙, 과감한 결정, 잘생긴 얼굴 등 그의 스타일에 팬들은 매료됐다. 드라이버 샷은 마치 테니스의 스매싱 같았고, 골프에서 금기처럼 돼 있는 구석구석을 찌르는 샷도 서슴없이 구가했다. 미국의 월터 하겐에 버금가는 ‘리커버리 샷의 귀재’라는 극찬을 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바예스테로스를 두고 “정석 스윙이 아닌 스타일로는 미국에서 우승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하지만 바예스테로스는 이듬해 최고의 정교함을 요구하는 마스터스에서 보란 듯이 우승하며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1983년 두 번째 마스터스 우승과 1984년 디오픈 트로피를 다시 차지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바예스테로스는 아널드 파머의 등장처럼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는 단번에 세계 골프계의 대스타가 됐다. 그러나 바예스테로스는 30대에 들어서면서 더는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황금 곰’ 니클라우스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받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했다. 병 때문이었을까. 훗날 그는 뇌종양으로 2011년 57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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