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몇 해 전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허물어져 가는 건물을 필사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조성룡 성균건축도시설계원 교수가 들려준 말이었습니다. 무너져가는 소록도의 마을과 건물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노(老)건축가 필생의 마지막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강관과 비계를 설치해 쓰러지지 않게 하고 있는 건 건축물이 아니라 ‘기억’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센병 환자를 격리했던 소록도는 ‘최소한’의 인권도 지켜지지 않았던 곳입니다. 섬으로 몰아넣고는 단종수술을 하고, 독방에 가두고, 제 자식마저 마음대로 만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잔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아픈 기억의 섬을 근사한 해수욕장과 특급호텔이 있는 욕망의 관광지로 바꿔 기억에서 지우자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소록도를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게 한때 공범이었던 우리가 반성과 사죄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를 담는 일이라 믿습니다. 사재까지 털어가며 섬을 지키려는 조 교수의 작업에 지지와 존경을 보내는 건 그래서입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난에 가까운 위기입니다. 전례 없는 전파 속도의 감염병도 무섭지만, 질병의 확산과 함께 특정 국가와 지역, 특정 종교, 그리고 특정 정치적 입장 등에 대한 혐오와 배타가 감염병보다 빠르게 번져 나가는 듯해 두렵기까지 합니다. 감염병의 창궐에 맞선 우리 사회의 대응과 태도, 그리고 방향은 과연 적절한 것일까요.

코로나19는 언젠가 종식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감염병의 시작과 결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復棋)해야 하고, 소록도의 건물처럼 꼼꼼하게 남겨둬야 합니다. 감염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와 방역 과정, 의료체계에 대한 평가와 점검 등과는 별도로 우리 사회가 위기에 맞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도 되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책임을 떠넘겼으며, 누가 문제를 호도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혐오가 부추겨졌으며 배타가 조장됐는지를 소상하게 적어둬야 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단죄하자는 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 방식과 매뉴얼을 쌓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고의 다짐의 의미이지요.

기록에는 우리가 겪었던 위협과 공포, 혐오와 배타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들도 되도록 자세히 적어두었으면 합니다. 자원해서 현장으로 달려간 의료진의 희생, 투명하게 상황을 알린 방역 전문가들의 노력, 자기 지역 병상을 기꺼이 내준 연대 등이 얼마나 크고 소중하며 자랑스러운 우리 사회의 자산인지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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