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어려서부터 시험을 통한 선발과 경쟁에 익숙해져, 결국 ‘시험인간’이 보통의 삶인 양 받아들인다. ‘시험 너머를 상상’하는 게 필요하다. 사진은 공무원 시험 학원의 강의 모습.  자료사진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어려서부터 시험을 통한 선발과 경쟁에 익숙해져, 결국 ‘시험인간’이 보통의 삶인 양 받아들인다. ‘시험 너머를 상상’하는 게 필요하다. 사진은 공무원 시험 학원의 강의 모습. 자료사진

- 시험인간 / 김기헌·장근영 지음 / 생각정원

어려서부터 선발·경쟁 익숙
스스로의 삶인 양 받아들여
승자·패자 명확한 구도 각인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전가

‘시험 너머를 상상’이 출발
교육 시스템 체계적 전환을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한 대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무슨 일로 한 국장을 나무라며 “왜 경제부처 공무원이 되었나? 생각 안 해봤지?”라고 묻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쌩하니 가버렸다. 홀로 남은 국장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공부 잘했고, 좋은 대학 갔고, 행시 붙었고… 여기 안 그런 사람 있어?” 질책받은 부하 직원의 푸념이라지만, 저 중얼거림에 한국 사회를 횡단하는 거대한 문제가 숨어 있다. 공부 못해 시험도 잘 못 봤던 사람의 편견일지 몰라도, 시험 몇 개 잘 봐서 고위 공직자와 판검사 된 사람들, 언론사와 대기업 간 사람에 의해 한국 사회는 얼마나 많이 망가졌던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인 김기헌·장근영이 쓴 ‘시험인간’은 시험이 낳은 한국 사회의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시험은 본래 “개인의 잠재력을 측정하고 특정한 교육과정이 개개인에게 미친 효과를 측정하는” 수단이지만, 한국에서는 인생을 걸어야 하는 오직 하나의 길이다. 영어유치원 선발 시험 준비를 시작으로 대학 입학 전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한다.

사실을 말하면 유치원 준비가 시작은 아니다. 생후 13개월 유아가 대상인 동영상과 각종 교구는 “정서 발달을 돕는다는 주장과는 달리 대부분 셈하기나 단어 익히기로 구성”되어 있다. 곧 태아 때부터 뭔가 해야 한다고 나설 판이다. 시험만능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험인간”은 이렇게 탄생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합격과 불합격의 책임이 모두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점인데, 저자들은 이를 ‘고부담 시험’(high stake exam)이라고 정의한다. 개인은 어려서부터 선발과 경쟁에 익숙해지고, 결국 시험인간이 스스로의 삶인 양 받아들인다. 부모는 ‘대학 갈 때까지만 참으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청소년들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시기를 학교와 학원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대학 간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취업 경쟁이 입시 경쟁보다 심화되면서 ‘역으로’ 취업 경쟁의 험난한 여정은 더욱더 많은 사람을 시험인간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시험인간이라는 정체성을 장착하는 순간 생각도 변한다. 일단 승자와 패자의 명확한 구도가 머리에 각인된다. ‘지잡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세상 아닌가. “명문대 대 지잡대”라는 구도가 명확한 이들에게 “정규직 대 비정규직” 구도는 이상하지도, 잘못되지도 않은 생각이다. 수많은 청년이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사회라고 학벌 등을 안 따질 리 없지만, 비교적 안정적이고, 특히 여성의 경우 “민간기업보다 공정하게 채용이 이루어지고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제도가 잘되어 있기”에 더 선호한다. 그러니 가장 창의적이고 튀어야 할 20대 중 상당수, 저자들의 추정치에 따르면 “38만 명에서 46만 명”의 청년이 ‘컵밥’으로 연명하며 공시생의 삶을 견뎌내고 있다.

시험이 공정하다는 신화도 사라지고 있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딸들을 위해 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를 받은 일이 단적인 사례다. 좋은 대학 가야 좋은 직장 가고, 그래야 사회에서 대접받는다는 믿음 아닌 믿음은 시험의 공정성마저 흔든다. 금수저, 쇠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시험이 공정하지 않다는 또 다른 말인 셈이다. “사용하는 필기구조차 똑같은” 수능은 모든 “응시생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문제를 동일한 시간 동안 풀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정해 보이지만, 자가용을 타고 시험장에 가는 학생과 지하철이나 버스로 가야 하는 학생, 결정적으로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공정하려야 공정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시험은 공정하다는 말은 이제 하나의 수사일 뿐, 누구도 믿지 않는 말이 되었다.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이 돋아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시험 너머를 상상”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핀란드는 “한국보다 학습시간이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항상 최고 평가를 받고 있다. 경쟁교육이 아닌 평등교육, 종합학교 형태의 학교 운영, 학생들의 자기주도성, 교사를 전문가로 신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는 점이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다. 저자들은 뉴질랜드와 일본 사례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경쟁은 답이 아니다. 저출산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쟁은 이제 더 이상 장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정보의 홍수로 학습 혹은 공부의 방법도 바뀌었다. 변화를 시작한다 해도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 시험의 체계가 바뀌어야 하고, 오로지 대학 가기 위한 시간으로 몰이해되고 있는 초중고 교육 시스템도 손볼 때가 되었다. 대안은 충실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구조를 시험을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변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시험인간’은 나름 의미 있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314쪽, 1만6000원.

장동석·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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