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료원 정형외과 병동, 휠체어를 타신 어머니와 창밖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무릎 관절염 수술 후 살짝 손만 대도 아프다고 하시던 어머니께서 이제는 휠체어도 손수 움직이고, 보조기구를 잡고 일어서는 것도 잘하신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면서 뿌듯해하는 부모 마음이 이런 걸까.
어머니께 여쭈었다. “엄마! 다시 결혼하면 그때도 아버지와 결혼하고 싶으세요?” “그럼!”
어머니의 대답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오랜 세월 고생하셨으면서도, 가끔씩 답답하다고 ‘답답, 최 서방아’ 몰아붙이면서도 성실하신 아버지가 참 좋으신가 보다.
관절염 수술로 시작한 병원 생활은 결핵에 늑막염, 나중엔 폐까지 안 좋아지셔서 몇 년을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며 보내셨는지 모른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어머니 곁에서 간병인 역할을 했는데, 무척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불안했던 시절,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힘겹게 했다. 어머니가 거동을 하실 수 없어서 대소변도 받아야 했는데, 그런 시간은 왜 그리도 자주 찾아오는지….
소변 보신다고 밤늦게 자는 나를 깨우실 땐 짜증이 나기도 했다. 미안해하시던 어머니의 표정과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좀 더 부드럽게 대해 드릴걸.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병원에서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하다.
7남매의 장남이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아내가 된 어머니는 열 식구 살림을 도맡아 하느라 시집살이를 톡톡히 하셨다고 한다. 연약한 몸에 맏며느리 역할 하랴, 나중엔 아들만 넷인 우리 키워내시랴,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한다.
예쁘장한 외모의 어머니는 젊었을 때 남자들이 많이 따르기도 했고, 달리기도 잘하셔서 코치가 육상부에 들어오라고 조르기도 했단다. 가끔 이런 자랑을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선보는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하게 됐다고 고백하셨다.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살 만하니까, 좋은 때 마음껏 누리지도 못하고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신 어머니. 가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주현미 노래도 같이 부르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에 된장찌개도 먹고 싶은데, 어렸을 때 동생이 닭발 같다고 놀리던 쭈글쭈글한 어머니의 손도 잡아드리고 싶은데…. 어머니는 손길이 닿지 않는 너무 먼 곳에 계신다.
어머니, 따뜻한 곳에서 잘 계시지요? 이름만 불러도 가슴 뭉클하고 먹먹한 이름, 어머니. 사랑합니다.
셋째 아들 최병윤(수원시 서수원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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