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생 100년 故 조중훈 회장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적자’ 대한항공공사 인수때
“공익차원에서의 소명” 강조
광범위한 국제 인맥 활용해
88서울 올림픽 유치 산파役
인하학원·한국항공대 인수
교육의 질적 향상위해 지원
국내 첫 사내 산업대학 열어
직원에게 배움의 기회 제공
한진그룹의 창업주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고 조중훈 회장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 아래 한평생 수송보국(輸送報國) 외길에 몸 바친 경영인으로 경제계에 회자되고 있다. 그의 궤적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지도층의 높은 도덕적 의무)’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1945년 11월 조 회장이 ‘한진상사’ 설립 때부터 사용한 사명 ‘한진’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의미다. 사업을 통해 우리 민족을 잘살게 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간 외교관 역할 등 국익에 앞장선 경영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조 회장의 경영 철학은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던 국영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결정한 조 회장은 중역들에게 “밑지면서도 계속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 이번 인수는 국익과 공익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召命)”이라고 강조했다. 항공사 경영을 통해 광범위한 국제 인맥을 쌓은 조 회장은 이를 활용해 민간 외교관으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노력했다. 88 서울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던 1981년. 조 회장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바덴바덴으로 날아가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했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국가들은 서울이 아닌, 경쟁 후보지인 일본 나고야(名古屋)를 밀고 있었다. 조 회장은 나고야를 지지하는 IOC 위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막후 설득 총력전을 펼쳤고 88 올림픽은 서울에서 열리게 됐다. ‘바덴바덴의 기적’을 일군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이 같은 민간 외교의 공을 인정받아 조 회장은 1977년부터 20여 년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몽골 정부로부터 모두 9개의 훈장을 받았다. 외교관도 관료도 아닌 민간인이 이처럼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훈장을 받는 일은 이례적이다. 그는 1973년부터 20년 동안 한·불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과 프랑스 간 경제 교류에도 앞장섰다. 프랑스 정부는 양국 우호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모두 4차례에 걸쳐 훈장을 수여했다. 1990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외국 국가원수들에게 최고 예우로 수여하는 훈장 ‘레지옹 도뇌르 그랑 오피시에(Lgion d’honneur Grand Officier)’를 전달했다.
몽골에 아무 조건 없이 B727 항공기를 제공한 일화도 있다. 조 회장은 1992년 유라시아 대륙 한가운데 고립돼 있던 몽골이 해외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항공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 영향으로 한·몽골 외교·경제 교류의 물꼬가 마련됐다.
◇인재 양성에 보람을 느꼈던 창업주 =‘종신지계 막여수인(終身之計 莫如修人)’. 인하대 정석학술정보관 1층 로비 한쪽 벽면에는 이 글귀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이는 ‘한평생을 살면서 가장 뜻깊은 일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조 회장은 평소 중국의 고서 관자(管子)에 나오는 이 명언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기업이 사회 복지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인재 양성’이라는 건 그의 지론이었다. 이에 맞춰 1968년 학교법인 인하학원, 1979년에는 한국항공대를 각각 인수해 학교시설을 확충했다.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정석고등학교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 돌산을 깎아 교사(校舍)를 건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젊은 학생들이 인천 시가지와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조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조 회장은 2년여에 걸친 교사 신축공사 기간 중 거의 매주 현장에 내려가 직접 감독을 할 만큼 애착을 보였다.
그는 ‘정석교육상’과 ‘정석장학금’ 제도를 만들어 교육 발전에 지속해서 이바지했다. 1988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의 기회를 얻지 못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국내 최초의 사내 산업대학인 ‘한진 산업대학(현 정석대학)’을 열어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조 회장은 이처럼 개인재산도 아낌없이 인재 양성에 투자했지만 “칭찬을 받자고 시작한 일도 아니고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자신이 기울인 정성이 밖으로 드러나길 바라지 않았다. 교육 내용, 학교 운영에도 철저히 독립성을 보장했다. 조 회장은 당시 “사학(私學)을 운영하는 목적은 인재 양성의 보람을 찾는 데에서 그쳐야지, 일시적으로 반짝 광이나 내고 보자는 식의 자기 과시적인 지원이나 당장 과실(果實)만 염두에 둔 것이어서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사회적 책임 다하는 글로벌 물류 기업 지향 = 창업주인 조 회장 타계 후에도 국익과 이웃을 우선시한 그의 경영 철학, 사회 공헌을 통한 책임 정신은 계속되고 있다. 고 조양호(1949∼2019) 선대회장에 이어 조원태 현 회장도 이를 계승, 발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한진그룹의 ‘DNA’가 된 셈이다. 조양호 선대회장 역시 “나눔의 정신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2011년 신년사)이라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사회 공헌 철학을 유난히 강조하고 실천했다.
조원태 회장도 이를 지속해서 전개하는 한편, 수송 기업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원한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한국 교민을 수송하기 위한 정부 전세기에 직접 탑승, 직원들과 현장을 함께했다. 직후인 지난 2월 7일 사내 인트라넷에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우리를 불러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중국 노선을 중단해야겠지만, 대한민국 국적 항공사로서 책임을 저버릴 수 없다”는 글을 통해 국가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조했다.
곽선미 기자 gs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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