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업체는 마스크 안 주고 약국에 갈 시간도 없어 감염 우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A씨는 요즘 주민들에게서 오는 연락으로 골치가 아프다. 관리사무소에 보관하는 택배를 집 앞까지 가져다 달라는 요청이 잦아져서다. A씨는 “이런 연락을 받고 짐을 날라줄 때마다 심부름꾼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13일 수도권의 여러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경비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람 간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관리사무소 직원이나 경비원들이 주민들로부터 갑질이나 다름없는 온갖 민원을 떠안게 돼 난감해하고 있다.
다른 입주자와 대면접촉해야 하는 층간소음 항의가 코로나19 사태로 새롭게 등장한 대표적 민원이다.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요즘 사람들이 집 안에만 있다 보니 층간소음이 배로 늘었는데 피해자들이 ‘대신 직접 찾아가서 말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 난감하다”며 “문제가 된 세대에 찾아가면 저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이분들은 안 쓰고 있어 매우 불쾌해한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경비원을 직접 만나 처리했을 민원도 최근에는 인터폰으로 대신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임대차계약 연장 서류를 전달하거나 각종 점검 등을 하려면 해당 세대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데, 세대원들이 “오지 말라”고 해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마스크를 쓰고 벗는 데도 주민 눈치를 봐야 하는 서글픈 일도 생긴다.
대구·경북에서 지역사회 집단감염으로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지기 전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일하면 “병 걸렸냐”며 불만스러워하는 주민이 많았다고 한다. 경비원 A씨는 “2월 중순까지도 마스크를 쓰고 일하면 주민들이 ‘마스크를 왜 썼냐, 병 걸렸냐’며 마스크를 벗으라고 다그쳤다”고 했다.
반면 사태가 심각해지자 거꾸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민원이 들어온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B씨는 “주민들이 사무실 안에 앉아 있는데도 ‘왜 마스크를 안 썼냐’고 항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동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마스크를 종일 끼고 있으면 답답해 사무실에서는 코 밑으로 내리고 있는데 주민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눈치를 보게 된다”고 했다.
주민들이 ‘병균’ 취급하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영등포구의 또 다른 아파트 경비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민들이 우리를 바이러스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특히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가는 등 노골적으로 피하기도하는데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하다”고 말했다.
경비원들은 마스크 등 필수 방역 도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감염에 노출된 환경도 걱정한다. 아파트나 용역업체에서 이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주로 약국이 문을 닫은 시간에 퇴근하다 보니 일주일에 2장 살 수 있는 공적 마스크도 구하기 어렵다.
성동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얼마 전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려고 출근 전인 아침 7시부터 줄 서 기다렸는데 10∼20분 만에 동이 났다”며 “도저히 마스크를 구할 길이 없다”고 했다. 영등포구의 한 경비원은 “마스크 하나로 2∼3일씩 버티는데 그마저도 부족하면 소독제를 뿌리고 삶아서 다시 쓴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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