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혼전을 거듭하던 미국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서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오는 17일 플로리다 등의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사실상 후보가 될 듯하다. 점점 심각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옥외 대중집회가 힘들어지고 있어 경선 조기 종료에 대한 당 내외의 압박도 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도파인 바이든은 연로한 데다 워싱턴 정계의 주류 기득권층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버니 샌더스(79) 버몬트 상원의원의 좌파 돌풍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졸린 조(Sleepy Joe)’라는 조롱까지 들었던 바이든의 회생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의외의 역할을 했다. 지난달 19일 열린 라스베이거스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블룸버그가 후보들의 표적이 돼 집중적으로 난타당한 덕에 바이든은 반사 이익을 챙겼다. 이후 민주당 대동단결론이 확산하면서 중도 후보들이 사퇴했다. 바이든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경륜 있는 지도자 이미지를 내세워 슈퍼 화요일의 승자가 됐다. 블룸버그는 지난 4일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 출마했는데 똑같은 이유로 경선에서 하차한다”며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가 경선에 뛰어든 것은 바이든 낙마 대비용이었는데 대세론이 형성된 만큼 소임을 다했다는 얘기다.

100일간 5억 달러(약 5915억 원)를 쓴 블룸버그의 정치 실험을 두고 슈퍼 리치의 돈 잔치라는 비난이 있지만, 바이든을 회생시키는 ‘조커’로서 역할은 톡톡히 했다. 미국 시민운동 단체 ‘퍼블릭 시티즌’ 창설자인 소비자 운동가 랄프 네이더는 실명 소설 ‘슈퍼 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Only The Super-Rich Can Save Us)’에서 워런 버핏 등 억만장자 17명이 150억 달러를 모아 벌이는 정치개혁 운동을 그렸다. 책에서 부자들이 정치 변화를 자신의 시민적 의무로 받아들인 것처럼 670억 달러를 보유한 세계 8위 자산가 블룸버그도 트럼프식 정치 종식을 자신의 책무로 생각했을 수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1일 트위터에 “트럼프는 미국과 민주주의 가치, 국가안보의 실재적 위협”이라면서 “미국을 망치는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끌어내기 위해 모두 힘을 합치자”고 했다. 슈퍼 리치 블룸버그가 바이든을 살려낸 데 이어 미국을 구하고 한·미 동맹도 강화시킬 수 있을까. 미국 대선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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