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정직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자주 오해와 갈등을 피하지 못한다. 낯선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을 배워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정직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자주 오해와 갈등을 피하지 못한다. 낯선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을 배워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타인의 해석 /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 김영사

효율적 소통위해 진화한 인류
거짓의 증거 나올때까지 믿어

얼굴·대화로 타인을 평가한다?
내면과 태도는 일치하지 않아

낯선사람에 대한 편견·선입견
인종차별·이민자 혐오로 발전


“낯선 사람이 우리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데, 왜 우리는 그걸 알아채지 못할까?”

‘타인의 해석’에서 베스트셀러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 묻는다. 관련 연구를 집약하고 수많은 사례를 집적해 인간 마음의 심오한 비밀을 캐내는 날카로운 통찰력,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탁월한 글솜씨는 여전하다.

인류사 대부분의 기간 인간은 서로 잘 아는 이웃과 함께 살았다. 상대가 누구이며 어떤 사회 규칙 아래 행동하는지 모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르다. 시공간이 극도로 압축되면서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모두의 일상이 되었다. 이는 스페인 정복자와 처음 만난 마야족의 상황처럼 무시무시한 위험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우리 마음의 도구들은 낯선 사람이 보내는 신호들을 자주 오해해서 우리가 기만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글래드웰에 따르면,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이용하는 첫 번째 도구는 ‘진실 기본값 모드’다. 이 말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기보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기만 연구’의 권위자인 티머시 러바인 현 고려대 교수가 앨라배마대 시절 제기한 학설이다.

제2차세계대전 직전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만나고 싶어 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히틀러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체임벌린은 세 차례 히틀러를 만났다. 이 운명의 ‘평화 회담’을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결과는 제2차세계대전이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따뜻한 환대에 놀아났을 뿐이다. 마음에 의심과 경계를 잔뜩 품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체임벌린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미국 정보기관은 쿠바의 이중 스파이에게 농락당하고, 월스트리트는 폰지 사기꾼에게 놀아난다. 책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의 거짓을 탐지하는 데 별로 유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러바인의 실험이 통찰을 제공한다. 학생 하나를 불러 상식 시험을 본다. 같이 시험 보는 파트너도 한 명 있는데, 정답을 맞히면 상금을 받는다. 조교가 중간에 갑자기 나가자마자, 파트너가 책상에 놓인 답안지를 훔쳐보자고 유혹한다. 30% 정도가 넘어간다. 나중에 학생을 면담하면서 커닝 여부를 묻는다. 대답을 들은 후 파트너는 같은 질문에 무슨 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이러면 사람이 진실과 거짓을 말할 때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면담 동영상을 무작위로 보여주었을 때 심판자는 거짓말쟁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정직한 학생과 거짓말쟁이를 반씩 나눠보라고 한 실험 결과도 끔찍했다. 관찰자는 평균 54%만 학생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가려냈다. ‘경찰관, 판사, 심리치료사, 중앙정보국(CIA) 간부’도 똑같았다. 언뜻 보면 되는 대로 추측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 대학원생이던 박희선 고려대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학생을 맞히는 데 우연보다는 훨씬 유능하다. 하지만 거짓말하는 학생을 맞히는 데에는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 이 말은 관찰자들이 일단 ‘진실’에서 출발, 진실이 무너질 정도로 충분한 증거가 제출될 때에만 ‘거짓’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진화의 도정에서 우리 마음의 기제는 ‘낯선 이가 진실하다고 가정함’으로써 ‘가끔 기만을 당하는 비용’을 치르는 대신, ‘빠르고 효율적인 소통’을 통한 이득을 취하는 쪽을 선택해 진화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사회가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데 우리가 사용하는 두 번째 도구는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행동과 태도, 즉 사람들이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들이 속으로 느끼는 방식에 대한 확실하고 믿을 만한 창을 제공한다는 관념’을 말한다. 판사들이 피의자에 대해 판단할 때 주로 이 가정을 이용한다. 변호사와 피의자의 감정 어린 호소를 듣고, 얼굴과 태도 등에 나타나는 마음을 보면서 사람의 진심을 판단해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2008∼2013년 뉴욕에서 공소 사실 심문에 출두한 피의자는 55만4689명이었다. 그중 뉴욕의 판사들이 보석으로 석방한 사람은 40만 명 남짓이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 등은 인공지능(AI) 시스템에 보석 대상자 40만 명을 다시 추출하도록 했다. 어느 쪽이 보석 중 더 적은 범죄를 저질렀을까. AI가 선별한 이들의 재범률(재판 불출석 포함)이 25% 낮았다. AI에는 ‘투명성’이라는 기댓값이 없기 때문이었다.

찰스 다윈은 인간의 얼굴 표정이 ‘마음의 게시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다윈은 틀렸다. 분노에 찬 서양인 사진을 남태평양 트로브리안드인들에게 보여주자 행복, 슬픔, 공포 등으로 읽었다. 뉴욕의 판사들도, 러바인 실험의 관찰자들도 판단 대상의 전형적인 태도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형편없는 거짓말 탐지기일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처럼 ‘정직하게 행동하는 부정직한 사람’도, 반대로 ‘부정직하게 행동하는 정직한 사람’도 있다. 인간은 투명하지 않다.

또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배경과 맥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히는 게 보통이고, 허튼 오해와 잘못된 판단을 낳는 게 일반적이다. 인종 혐오나 이민자 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낯선 사람의 진실을 전부 알 수 있다는 오만이야말로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인류가 낯선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자에 대한 불신과 공포로 움츠러들 것인가, 신뢰와 관용에 바탕을 두고 삶의 새로운 규칙을 일구어 갈 것인가 하는 갈림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저자의 해법은 한 줄이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관용과 겸양, 인간의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472쪽, 1만8500원.

장은수 이감문해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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