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엄마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간병인에게 이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게 당신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도 작은 일에 감사함과 기쁨을 느끼고 표현할 줄 아셨던 엄마.
1935년 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마을에서 5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나셨습니다. 14살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 5살 어린 동생과 바로 위의 언니 집에 얹혀살게 되셨죠. 이모는 고아가 된 어린 동생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보시고, 적당한 혼처에 시집도 보내며 사랑으로 키우셨습니다.
가난한 집에 시집온 엄마는 저와 언니, 오빠를 교육시키려 구멍가게를 하셨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하루 종일 밥하고 설거지와 빨래를 하시는 등 가사노동과 가게 일을 병행하시며 밤 12시가 돼서야 잠드는 고단한 삶에도 저희에게 짜증 한번 안 내셨습니다. 3남매 중 누가 아프면 온종일 일한 피곤한 몸에도 밤새워 간호하시고, 작은 일에도 잘했다 칭찬해주시며 사랑으로 저희를 키우셨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의 모든 아기를 다 보살필 수 없어서 보낸 게 엄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우리 3남매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감사하기만 합니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우리 3남매를 대학까지 보내시느라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셨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자식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소망하셨기 때문이라고 짐작합니다.
엄마의 일생에서 가장 슬펐던 일은 하나뿐인 아들을 먼저 보낸 일이었을 겁니다. 오빠는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며 결혼을 앞두고 있던 여름, 물놀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엄마는 불면증과 우울증, 고혈압을 앓으셨습니다.
그러나 천성이 긍정적이셨던 엄마는 남은 가족을 위해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열심히 사셨습니다.
2019년 여름, 엄마는 느닷없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어요. 정신을 차리시고 간호사에게 처음 한 말이 “언니 밥해주러 가야 하는데, 우리 언니 기다리는데”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스스로 몸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도 당신의 자매를 걱정하는 모습에 왜 엄마는 이기적이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입원해 계셨을 때 둘째 이모가 기다린다고 하니 눈물을 흘리시며 “살아야 할 의미를 찾았다”고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사고 후 4개월 만에 돌아가신 엄마는 저에게 서로 사랑하고 돕고 사는 게 인생이란 걸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은 제게 큰 아픔입니다. 하지만 엄마를 지나간 일에 연연해하며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름다웠던 당신의 성품을 닮아 남에게 베풀고 작은 일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는 딸이 되고자 합니다.
우울해지기 쉬운 일상에서 작은 일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을 줄 아셨던 당신. 이제는 편히 보내드리려 합니다. 엄마에게 받은 넘치는 사랑을 후대에 나누고 베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셋째 딸 최지연(강원 A 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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