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 前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자기통제·작은 성취에서
개인적 무기력감 극복을

정의 실종 사법적 무기력
배심제 재판 도입해 해결

정치적 무기력 회복하려면
선거서 지도자 제대로 뽑길


무기력감이란, 자신이 힘이 없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죽어라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사람, 또 수많은 입사 시험을 치렀는데 번번이 낙방하는 사람은 무기력감에 빠진다. 심하면 자살까지 시도한다. 무기력감은 흔히 개인적 경험에서 온다. 그러나 사회적 원인이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는 환자의 침 등 비말을 통해 감염되기에 개인이 아무리 조심해도 예방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전 국민이 무기력감과 불안에 떨고 있다.

어디 코로나19뿐인가? 지금 한국인은 여러 종류의 사회적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

첫째, 입법적 무기력감은,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필요한 법을 제정하는 게 제 역할인데 지난날 우리 국회는 삼권분립을 스스로 파기하는 불법을 자행함으로써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둘째, 사법적 무기력감은, 사법정의 때문에 발생한다. 한동안 ‘무전 유죄, 유전 무죄’라는 풍자어가 유행했다. 가난한 사람은 유죄 판결을 받는데, 부자는 죄를 지었어도 처벌받지 않고 쉽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풍조를 비꼰 말이다.

셋째, 정치적 무기력감은, 정치지도자, 특히 대통령에 대한 무기력감이다.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은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다. 좌파 대 우파, 지역주의, 검찰개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로 갈라진 정치의 난장판은 국민에게 절망을 안긴다. 더불어 한국 외교는 세계 외교 무대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중국·북한에 편향적인 외교, 미국·일본에 대한 거리두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찬반이 극명해 국민을 분열시킨다. 과연 훌륭한 대통령이 나올 수 있을까? 국민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면 무기력감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개인적 무기력감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자기 통제감을 키우는 것이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무기력감을 동물 실험으로 연구했다. 개를 쇠창살에 가둬 놓고 전기충격을 주면 개는 울부짖으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도망가지 못한다. 이를 반복하면 개는 더는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쭈그려 앉아 전기충격을 받는다. 무기력감에 빠진 탓이다.

셀리그먼은 개에 자기 통제감을 길러주는 실험을 했다. 상자 밑바닥에서 가해지는 전기충격을 개가 코앞에 설치된 단추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게 했다. 같은 횟수의 전기충격을 받은 개 집단에 비해 코로 단추를 눌러 전기충격을 피한 개들은 무기력감이 줄어들고 활기를 되찾았다. 전기충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자기 통제감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인간 스스로 자기 통제감을 개발하는 방법은 어려운 일을 달성하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다. 나는 교수로 임명된 후 1년에 책을 한 권씩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저술 작업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므로 실패하기 쉽다. 그렇지만 나는 저술 목표를 달성했다. 거기에는 나만의 비결이 있었다. 저술할 때 순서대로 글을 쓰지 않고 내가 잘 쓸 수 있는 장(章)을 먼저 쓰는 것이다. 이렇게 해 서너 장이 완성되면 나머지 어려운 장을 쓸 수밖에 없다. 왜? 이미 써놓은 장을 버리기 아깝기 때문이다. 학생이든 취준생이든 목표를 너무 처음부터 크게 잡아서는 안 된다. 실패하기 쉽고, 실패를 자주 하면 무기력감이 생겨 좌절하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해 자기 통제감을 키워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기력감이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상심리학자와의 상담을 통해 무기력감을 없애야 한다.

사회적 무기력감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사법적 무기력감을 먼저 생각해 보자. 사법적 무기력감은 판사·검사·변호사가 관여하는 관계로 부정한 재판이 나올 때 발생한다. 사법적 무기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배심원제 재판을 한다. 배심원제란 전화번호부를 통해 무작위로 뽑힌 9∼12명의 배심원이 재판하는 제도다. 일반 시민이 여러 번의 숙의를 통해 평결하므로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많이 없어진다. 더불어 시민들이 사회정의를 행사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자신이 법조인이었기에 사법부의 부패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배심원제를 도입하려고 전문가들과 함께 노력했지만, 법조인들의 반발이 거세서 한국의 배심원제는 ‘국민참여재판’이란 기형아로 태어났다. 우리나라도 하루바삐 배심원제를 도입해 국민의 법적 무기력감을 해소해야 한다.

이어 정치적 무기력감을 극복하는 길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제대로 뽑는 것이다. 어떤 지도자가 적격자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이번 4·15 총선은 그간 코로나19 때문에 선거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누가 올바른 입후보자인지를 가리기가 수월치 않다. 나는 나만의 선출 기준을 갖고 있다. 첫째, 학력은 대학 졸업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경력은 직업 경력자이되 관리 경험자면 더욱 좋다. 셋째, 원만한 가정 출신자이고 화목한 가정 영위자여야 한다. 넷째는 신뢰성으로, 범법자가 아니고 잦은 당적 변경자도 아니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미래 비전을 갖고 국가 발전에 봉사하는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코로나19는 언젠가 퇴치될 것이고, 그러면 무기력감은 해소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무기력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원인 제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 무기력감을 박멸하겠다는 국민 모두의 굳은 의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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