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경 경제산업부 차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가운데 19일 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치 끝을 모르는 깜깜한 터널을 질주하던 중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마주한 느낌이라고 해두면 좋을 것이다. 사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이전에 우리 경제는 최악이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에 육박하고 14일 이후 외환 스와프 시장 수급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19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33.56포인트(8.39%) 폭락한 1457.64로 마감했는데 이는 종가 기준으로 2009년 7월 17일(1440.10) 이후 10년 8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채권이나 금 가격 역시 주저앉으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흔들리지 않는 건 달러밖에 없었다. 경제적 위기 타개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한·미 통화스와프라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번에 체결된 한·미 양자 간 통화스와프 규모는 600억 달러 규모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2008년 10월 30일 300억 달러 규모로 맺은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조치는 최근 급격한 원화가치 하락에 제동을 걸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2010년까지 유지됐던 첫 번째 한·미 통화스와프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외환시장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이번 통화스와프 체결의 일등 공신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체결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그는 “한·미 통화스와프는 훌륭한 안전판이 될 것”이라는 식의 원론적이고 신중한 답변만 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물밑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총재는 국제결제은행(BIS) 이사로 선임된 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두 달에 한 번꼴로 만나 신뢰 관계를 쌓았다. 지난 2월 말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파월 의장과 단독 면담하면서 통화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설득했다. 이게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에게 자필 편지를 보내 지원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월 말 기준 4092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으로 과거보다 외환 방어막을 높게 쳐 놓았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환율이 치솟고 달러 수급이 불안정해질 때면 이마저도 충분한 규모라고 안심할 순 없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이 그다지 많지 않은 데다 단기 외채 비율도 34%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확실한 기반일 뿐 최종 솔루션은 아닌 셈이다. 이번 통화스와프는 오랜 우방인 한국에 대한 미국의 선물로 이해하는 것이 맞는다. Fed가 통화스와프 체결을 한 국가들을 보면 모두 글로벌 지역 경제의 맹주거나 우방국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중국은 코로나19를 줬으나 미국은 통화스와프를 건넸다고 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이 ‘군사 동맹’에만 그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는‘가치 동맹’임을 일깨워 주는 좋은 기회였다. 어려운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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