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순(1938∼2019)

지난 겨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슬프지 않고 즐거움이 앞섰다.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철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하얀 와이셔츠에 면바지를 다려 입고 언제나 그 자리에 서 계실 줄 알았다.

할아버지의 부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왔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발견했다. 할아버지 함자 뒤에 새겨진 두 글자. ‘사망’. 머리를 세게 쥐어박힌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와 큰 유대를 쌓지 못했다. 시골이 싫었다. 시골의 할아버지 댁이 싫었던 건 당연했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찾아뵙지도 않았다. 내 성격 또한 살갑지 않아 어르신들께 붙임성있게 다가가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긴 적막이 존재했다.

설이나 추석 등 집안 대소사가 있는 날에만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온 손녀 손주가 밉지도 않으신지 따뜻한 안방을 남동생과 나에게 내주셨다. 당신은 외풍이 거세 실내임에도 외투를 걸쳐야 하는 거실에서 생밤을 까셨다. 차례상에 올릴 생밤은 언제나 할아버지 몫이었다. 동생과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면 어김없이 나를 부르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밤 대담’.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암묵적 전통이었다. 할아버지는 밤을 깎으시며 내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아버지가 깎고 계신 것이 밤인지, 내 영혼인지 헷갈릴 때까지 계속되는 마라톤 대담이었다. 중간에 공급되는 생밤은 생명수 그 자체였다. 기나긴 대담 끝 결론이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것을 내가 매번 예측할 수 있었던 건 생밤 대담이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음을 증명한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드린 안부 전화 끝에도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만 생각하면 이 말이 귓가에 맴돌 정도로 할아버지는 내 이름보다 “공부 열심히 해라”를 더 많이 말씀하셨다. 당시엔 ‘손녀에게 하실 말씀이 그것밖에 없나’라는 생각이 들어 못내 서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당신이 아시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으리라.

할아버지는 배움에 늘 목말라 계셨다. 당신의 부족함에서 비롯된 불편과 설움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내 아버지를 재수까지 시켜 서울로 대학을 보내신 분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바라는 기대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지난 설날, 할아버지 납골당을 찾았다. 이제는 새하얀 집에서 편히 쉬고 계신 할아버지를 향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버지, 손녀 법학과 갔어요. 좋으세요?” 코끝이 찡해졌다.

한 번도 할아버지께 어떤 손녀가 되겠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곁에 계시지 않고서야 비로소 고민하게 된다. ‘나는 할아버지께 어떤 손녀로 기억될까.’

할아버지, 멀리서 지켜봐 주세요, 제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는지. 저도 늦게나마 할아버지를 추억할게요.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손녀 고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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