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에 붙어 있는 북정마을은 골목에서 사람들의 진한 이야기들이 넘쳐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래 사진은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
서울 성곽에 붙어 있는 북정마을은 골목에서 사람들의 진한 이야기들이 넘쳐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래 사진은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


■ (14) 북정마을

성곽과 붙어 있는 언덕 산동네
일방통행 도로에 빙 둘러싸여

한용운이 말년 보냈던 심우장
마당을 거닐며 삶 바라봤을 듯

낭만은 정신의 여유에서 생겨
마당의 여백에서 낭만 느껴져


지난해 가을, 내가 이사 가서 살면 딱 좋겠다는 지역을 추천하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서 보면, 당장 이사를 결심할 동네야.” 이사 철이 되면 다시 친구가 북정마을을 언급할 줄 알았는데,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일절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많이 걷는 사람. 집에서 그곳까지 걸을 수 있을지 가늠해 보다가, 일단 걷기로 한다.

광화문광장을 지나자 슬슬 자신이 없어진 나는 동십자각 앞에서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내려 서울과학고등학교가 왼편으로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넘자마자 다시 왼쪽으로 난 성곽길이 보인다. 성곽을 끼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특히 검은 마스크를 한 집단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거나 쏘아보는 모습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숨이 턱에 차는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폐활량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의 폐는 힘차게 공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지만, 나는 마스크를 하면 중환자가 된 것처럼 몸이 가라앉는다. 그래도 공기의 흐름이 빠른 야외에선 민얼굴에 닿는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태연히 걷는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이처럼 당당하게 걷는 것이 얼마 만인가.

성곽과 붙어 있는 언덕의 북정마을은 내가 성장한 도시의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집은 그 소도시의 중심에 있었으니, 정확히는 한 친구가 살던 산동네를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가 늘 난전에 앉아 있던 그 친구의 집은 아버지로 인해 몰락한 뒤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이 한때 아주 잘살았음을 알게 하는 것들은 집안에 남은 작디작은 물건들뿐이었다. 갑자기 집달리가 들이닥쳤을 때 민첩한 사람이 호주머니에 넣어 숨길 수 있는 크기의 물건들이 반딧불이처럼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빛나곤 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그 가족에겐 현실을 한 번에 역전시킬 기적 같은 기회가 왔다. 한 채무자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땅문서를 내던지다시피 주고 갔는데, ‘공짜로 줘도 안 가질 쓸모없는 넓은 땅’의 가격이 도시의 개발계획과 맞물려 어마어마하게 폭등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하지만 세상은 왜 또 그리 잔혹한지. 지긋지긋한 가난을 일 초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던 자식들은 돈이 갖는 함정에 또 걸려들었고, 더 깊은 구덩이로 다시 내몰리고 말았다. 어째서 죽을 만큼 아팠던 어떤 경험은 체험한 자의 미래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북정마을은 일방통행 도로에 원형으로 둘러싸여 있다. 느긋하게 걸으며, 나는 이곳이 내가 살고 싶은 장소가 아님을 깨닫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평지를 선호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주는 전체적인 느낌은 편안함이다. 작은 간판을 단 허름한 가게와 마을버스 정류소도 정답게 보인다. 간판도 없는 밥집들이 즐비했던 골목엔 왠지 진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것만 같다.

조은 시인
조은 시인
북정마을 바로 아래엔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尋牛莊)이 있다. 심우장으로 내려가는 골목 역시 좁고 가파르다. 심심찮게 보이는 폐가 앞에 선 나는 잇닿아 있는 성북동의 대저택들을 떠올린다. 오래전 친구들과 성북동의 엄청난 저택 앞을 지나갈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저렇게 살면 창피하지 않을까?” 그때 같이 있던 다른 친구는 경제적 삶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던 자였는데, ‘얘가 정신이 바르지 않구나!’ 하던 표정을 서슴없이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었고, 자연히 안부도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심우장은 113평 땅에 18평 남짓한 건물이다. 넓은 대지 속 작은 집은 경제력의 문제였을까, 마음의 문제였을까. 아무튼 요즘 나의 화두는 낭만이다. 낭만은 여백에서 생기는 것이다. 젊어서는 약한 정신의 산물이라고 여겼던 낭만이야말로 강하고 여유로운 정신에서 샘솟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집의 여백으로 느껴지는 마당을 좋아하고, 어디서든 마당에 서 있거나 서성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심우장에서 10여 년을 살며 임종을 맞았던 한용운도 수없이 마당을 거닐며 자신의 삶을 바라봤을 것이다.

다시 북정마을로 올라가 성대 후문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 내려오기 전에 나는 이곳의 어떤 점이 친구로 하여금 그토록 나에게 추천할 만큼 확신을 줬는지 생각해 본다. 친구는 내가 아직 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나의 경제력만을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이사를 권한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이 순간 30여 년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 애착한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16평 대지에 1㎝의 여백도 없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집의 세 면이 골목길과 맞닿아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건축법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형태다. 우리 집고양이들은 그 길의 풍경을 보느라 늘 창에 바짝 붙어 있다. 골목 입구에 있는 지금의 집에 살면서 나는 저절로 동네 사람들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가족들이 있는 집에 도착하기 전에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비밀을 나누거나 마무리하곤 한다. 그러니 이웃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주택가에서는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예절은 자신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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