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광 다 누린 골프의 여왕
마흔 나이에 도전한 마지막 기회
4.6m 버디 놓쳐 준우승만 4차례
1970년대 말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잭 니클라우스와 톰 왓슨, 조니 밀러 등 파워풀한 미국선수들이 중심에 섰다. 남자골프의 활동이 너무 왕성했기에 당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보조 역할에 그쳤다. 게다가 여자골프에선 1950년대 베이브 자하리아스 이후 이렇다 할 스타가 나오지 않았다. 낸시 로페즈(사진)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다.
로페즈가 데뷔하자마자 골프계는 장차 LPGA투어를 이끌어 나갈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선수로 낙점했다.
로페즈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준비된 스타였다. 20세기 최고의 스포츠 우먼이었던 자하리스의 사망 6개월 전인 1957년 1월에 태어난 로페즈는 12세에 아마추어대회 우승 행진을 펼쳤다.
15세에 US 주니어 주대회 챔피언, 웨스턴 주니어 등을 휩쓸었다. 17세에 골프 장학생으로 털사대에 입학했다. 로페즈는 1977년 US여자오픈 직전 프로로 데뷔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미네소타주 헤이즐틴골프장의 7월. 21세기 들어 라이더컵과 남자 메이저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유서 깊은 골프장이다.
아마추어 시절이던 1975년 US오픈 준우승을 차지했던 로페즈는 데뷔 첫 대회인 1977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후보로 주목받았다.
로페즈의 연승가도는 이듬해인 1978년 시작됐다. 그 해 5연승을 포함해 무려 9승을 챙겨 신인상,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했다. 프로 데뷔 1년여 만에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하는 영광을 누리는가 하면 뉴욕타임스 표지 인물로도 실렸다. 9승 중 메이저대회인 LPGA챔피언십도 포함됐다. 로페즈는 그다음 해에도 8승을 올렸고 미국 언론은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흥분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스타 로페즈는 그러나 골프 인생에서 뼈아픈 한을 남기게 된다. US여자오픈과 드모리에클래식 등 2개의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다. US여자오픈은 1989년과 1997년까지 준우승에 만족했다. 2위만 모두 4차례였다. 드모리에클래식은 1979년, 1981년, 1996년까지 역시 준우승만 3차례였다.
1997년 US여자오픈은 로페즈에게 가장 깊은 상처가 됐다. 포틀랜드주의 오리건 펌킨리지 골프코스에서 로페즈는 4일 동안 한을 풀려고 사투를 벌였다.
로페즈는 영국의 앨리슨 니컬러스에게 3타 뒤진 채 4라운드를 출발했다. PGA투어에서는 당시 타이거 우즈가 데뷔하면서 불과 3개월 전 마스터스 우승을 한 덕에 골프가 세간의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LPGA투어는 여전히 인기가 없었지만 US여자오픈 만큼은 예외였다. 당시로는 기록적인 4일 동안 연인원 12만 여명, 일요일에만 4만 갤러리가 모여 들었다.로페즈는 17번 홀까지 1타 차로 추격했다. 로페즈는 18번 홀에서 4.6m 버디 기회를 잡아 연장전을 기대할 수 있었다. 40세가 된 로페즈의 우승을 보기 위해 이날 4만여 명의 구름 갤러리가 몰렸다. 그러나 로페즈가 친 내리막 버디 퍼트는 홀을 비켜 갔고, 앨리슨은 1m 파 퍼트를 집어넣었다. 로페즈의 US여자오픈 마지막 준우승.
로페즈는 그러나 US여자오픈 사상 처음으로 나흘 내내 60대 타수(69-68-69-69)를 작성했다. PGA투어에서 샘 스니드가 US오픈 트로피만을 가져가지 못했듯, 여자골프의 거성 로페즈 또한 US여자오픈에선 무관이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
주요뉴스
시리즈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