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인(1956∼2012)

승인이와 나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의 나이는 나보다 5살이나 적었지만, 선배나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차리고 호의를 베풀었다. 맡겨진 일 또한 시원스럽게 잘 처리했다. 나는 그런 그가 머지않아 고위직에 오를 것이라 예감했다. 승인이는 회사 재직 중에 입대했는데 휴가를 나올 때면 선배 상사에게 갖은 아양을 떨며 휴가비를 타 갈 정도로 넉살도 좋았다.

그는 복직하자마자 내 예감대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대리, 과장을 거쳐 차장인 날 건너뛰고 부서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군에서 휴가 나올 때면 형님 형님 하면서 용돈까지 받아가던 그 녀석이 바로 내 위에 책임자로 온다니 나를 밀어내기 위한 회사의 정책 같았다. 난 퇴사 후에 닥칠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승인이는 그런 내 마음을 금방 알아차리고 술 한잔 사겠다면서 날 끌고 갔다. 그는 못 먹는 술을 몇 잔 들이켜더니, “선배님! 선배님은 나의 영원한 형님이며, 끝까지 형님으로 모실 것을 약속할 테니 제발 퇴사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다이너스클럽에서 VIP 회원에게만 선물하는 초침 두 개가 박힌 손목시계를 내 손목에 채워주었다.

술이 여러 잔 들어가면서 우린 결국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자고 굳은 약속을 했다. 그야말로 환상의 커플이 된 우리는 타 부서보다 월등한 실적을 올렸다. 그는 항상 나에게 예의를 지켰으며, 나 또한 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천성이 남을 짓밟고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고 약속과 의리는 그의 인생 좌우명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딸 영애가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딸 때문에 그는 결근과 지각이 많았지만, 사정을 잘 아는 나는 그를 이해하고 도와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일부 직원은 딸을 핑계 삼아 요령을 피운다고 비아냥했다. 그래도 그는 낙천주의자였고 다정다감했으며 인정도 많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회사는 법정관리가 됐고 우린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토바이 택배 회사를 차린다고 했다. 난 급한 대로 신용카드 배달을 시작했다. 눈코 뜰 새 없이 10년이 금방 지나갔다. 딸아이의 결혼 날짜가 정해지자 나는 여러 번 바뀐 그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10년 만에 통화를 했는데 뜻밖의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승인이의 사랑하는 딸 영애가 백혈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비보였다.

그 후로 우리는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동묘에서 만나 청계천을 바라보며 막걸리를 마시고는 했는데 어느 날 승인의 아내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딸 곁으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얼마 전 전화가 왔을 때 승인이가 던진 말이 떠올랐다. “형님! 담낭암 걸리면 살 수 있나요?” 그러고는 대뜸, 형님은 건강하셔야 한다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으면서도 내가 걱정할까 봐 끝까지 말기 암이란 사실을 숨긴 것이었다. 영등포에서 24시 작은 슈퍼를 하고 있는 내가 분당병원까지 문병 간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 얘기를 안 한 것이 분명했다.

날 끝까지 형님으로 인정해 준다던 약속을 지킨 의리파 승인이. 난 괴로울 때마다 그가 준 초침 두 개가 박힌 시계를 어루만지며 그리움을 달래보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다.

선배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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