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핑계로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준(準) 계엄령 조치를 취하자 유럽연합(EU) 지도부가 제동을 걸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긴급 제한 조치가 민주주의를 훼손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31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지난 몇 주간 여러 EU 정부가 코로나19 발병으로 초래된 보건 위기를 다루기 위해 비상조치를 도입했다”며 “긴급조치가 우리의 근본적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EU는 자유, 민주주의, 법의 원칙, 인권 존중의 가치 위에 세워졌다”며 “우리는 이런 도전적인 시기에도 이 가치를 지키고 수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어떤 긴급조치든 필수적이면서 철저하게 비례적인 정도로 제한돼야 한다. 절대 무기한 지속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어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불확실한 시간에도 표현의 자유와 법적 안정성에 대한 존중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헝가리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오르반 총리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헝가리 의회는 코로나19 방역을 목표로 무기한으로 계엄령에 준하는 조치를 강제하는 이른바 ‘코로나19 방지법’을 제정했다. 가짜 뉴스를 유포할 경우 최대 징역 5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오르반 총리가 사실상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럽의회 의원들도 이번 사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자유민주당(ALDE) 그룹의 소피 인트벨드 의원은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죽이는 프로젝트를 마쳤다”며 “헝가리 정부의 행동은 EU 회원 자격과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 루마니아 총리인 다치안 치올로슈 EU 집행위원은 “끔찍한 코로나가 그런 식으로 남용되는 것이 부끄럽다”고 성토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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