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논설위원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하고 속삭이던 노래 ‘벚꽃 엔딩’이, ‘벚꽃이 피나 봐요 이 겨울도 끝이 나요’라고 흥얼거리는 ‘봄날’에 순위가 밀렸다. 두 유행가 노랫말마따나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벚꽃잎은 춘심을 뒤흔드는 마력이 있다. 화신이 예년보다 열흘 넘게 일찍 북상해 서울에도 은은한 벚꽃 내음이 화사하다. 하지만 올봄 전국 대부분의 유명 벚꽃 축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 4월 첫날인 오늘부터 오는 11일까지 서울 여의도 국회 뒤편의 벚꽃길 등 많은 도로가 통제된다. 아쉽기 그지없다. 하지만 소메이요시노자쿠라의 나라 일본도, 포토맥 강변의 체리블라섬 페스티벌이 유명한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사실로 위안 삼을 일이다.

벚꽃은 겨우내 두툼하고 어두운 롱패딩을 벗어던질 시간임을 알리는 전령이다. 그의 수명은 길지 않다. 4∼5일에 불과한 천수조차 다 누리지 못하는 때가 많다. 가벼운 비바람에도 스러진다. 화무십일홍…. 소설가 고 손소희가 그랬듯이 벚꽃은 한 송이나 한 가지, 아니 한 그루로 봐서는 신통할 게 없다. 수천수만의 나무가 구름같이 어우러져 꽃을 피워야 멋있다. 꽃은 꽃인데 저 혼자는 주목받지 못하고, 같은 종끼리 군화(群花)를 이뤘을 때 비로소 뭇 연인들의 배경이 되어 추억 사진첩에 담긴다.

100시간 남짓한 벚꽃의 한평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점은 따로 있다. 봉오리 시절도 아니고, 갓 개화한 무렵도 아니다. 활짝 피었을 때보다도 더 아름다운 때가 있다. 다섯 장의 꽃잎이 제각각 바람 따라 춤추듯 날아가는 시간이다. 자신을 버리면서 남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장관이다. 이를 사람들은 산화(散花)한다고 한다. 일본의 선승 료칸(良寬)의 하이쿠(俳句·일본 전통의 짧은 시구)가 연상된다. ‘지는 사쿠라/ 나머지 사쿠라도/ 지는 사쿠라’.

벚꽃의 일본말 ‘사쿠라(櫻)’는 외래어로 우리말에 건너와 전혀 다른 뜻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속셈을 가지고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 곧 변절자를 가리킨다. 특히, 여당과 야합하는 야당 정치인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연말 여당에서 ‘위헌 선거법’을 만들 때 가담한 이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보름 뒤 총선이 끝난 뒤에도 이들 사쿠라는 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인가.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이라. 피고 지는 벚꽃에게서 겸손과 순리를 배워야 할 시간이다.
황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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