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조선화(朝鮮化)’. 대한민국이 걸어왔고 가야 할 이정표에 엉뚱한 과거형의 단어가 들어 있다. 386운동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의 중심세력들이 조선 시대 일부 사대부(士大夫)들처럼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세력들을 몰아내려 하는 시대 퇴보적인 행태를 풍자하는 요즘 떠도는 말이다. 과장이 섞인 조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4·15 총선을 대놓고 ‘조국의 명예회복을 결정하는 선거’라고 규정하고 나선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야말로 역사를 되돌리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조 전 법무부 장관을 ‘형’이라고 부른다는 그는 최근 페이스북에 사화가 한창이던 조선 중종 때 역사적 인물들을 소환했다. 열린민주당의 비례대표 8번으로 금배지를 노리고 있는 그는 최근 자신의 SNS에 “‘조’를 생각하면 중종 때 개혁을 추진하다 모함을 당해 기묘사화(士禍)의 피해자가 된 조광조 선생이 떠오르고, ‘대윤’ ‘소윤’ 하면 말 그대로 권력을 남용하며 세도를 부리던 윤임·윤원형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는 조 전 장관을 조광조에, 윤석열 검찰총장과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윤임·윤원형에게 빗댔다. 그는 “검찰 쿠데타 세력을 공개한다”며 윤 총장 등 조 전 장관 수사를 담당했던 현직 검사 14명의 이름도 올렸다. 조선 시대로 치자면 ‘역도(逆徒)’들의 이름을 공개한 것이다. 한양조씨 대종회에서 “조상을 욕보였다”며 사과하라는 글들이 올라왔고, ‘조’와 ‘윤’의 비유가 반대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는 그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비유인지 여부를 떠나 그가 지금 세상과 선거판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21세기에 ‘형의 원수’를 갚겠다고 당파싸움의 폐해가 최정점이었던 시대를 입에 올리는 게 이들의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를 이끌었던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개국본)’가 여권 비례정당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싸움’과 ‘복수’는 그들의 공통된 키워드인 모양이다. 역시 열린민주당에서 비례대표 2번을 부여받은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은 윤 총장을 신설될 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이라고 대놓고 언급했다. 그는 라디오에서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아마 본인(윤 총장)과 배우자가 더 먼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살기가 느껴지는 그의 말에도 ‘복수심’이 이글거린다.
그는 조 전 장관 아들의 인턴증명서 위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둔 인물이다. ‘야바위’ 같은 선거법의 결과로 탄생한 비례정당에서 이들은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프레임’으로 진보 분열을 일으켜 표를 갉아먹는다고 보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조국 수호 열사’들을 전략공천 하지 않았던가. “21대 국회는 ‘조빠’들의 천국이 될 것”이란 말은 허언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특권과 반칙 불공정의 대명사인 조 전 장관이 정치적으로 복권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같은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변호사는 SNS에 ‘손끝으로 조금 찍어 먹어보고 된장인 줄 알아야지 한 독 다 퍼먹어 봐야 된장인 줄 안다면 대책 없다’고 썼다. 유권자의 판단력과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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