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9단이 지난달 26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신진서 9단이 지난달 26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 ‘국내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

7년전 이창호 9단 꺾었을 땐
자신감 얻었지만 봐 주신 듯
이세돌 氣에 눌려 무너진 날
내 바둑 둬 승리하겠다 다짐

코로나로 요즘 인터넷 대국
커제 무명 땐 자주 겨뤘지만
유명해지더니 대결 안받아줘

네 살 때 검은 돌 잡기 시작
‘바둑’하면 힘든 기억 더 많아
배움과 응용 끝이 없는 영역
즐기는 것만이 슬기로운 방법


국내 바둑랭킹 1위 신진서(20) 9단의 별명은 ‘저승사자’다. 신 9단이 최근 각종 국내외 대회에서 ‘연전연승’을 거둬 붙여진 별명. 신 9단은 그동안 12개의 크고 작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12년 프로에 입단한 신 9단은 2015년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신 9단은 20세 이하 세계대회인 제4회 글로비스배(2017년)와 31회 TV아시아대회(2019년) 등 국제 기전에서 정상에 올랐고, 지난 2월 12일 제24회 LG배 결승에서 박정환 9단을 꺾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세계 메이저대회를 제패했다. ‘적수가 없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신 9단은 올해 22승 1패로 다승, 승률, 연승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지난달 8일엔 28연승 행진으로 역대 최다 연승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 최다 연승 1위는 김인 9단의 40연승, 2위는 이세돌 9단의 32연승, 3위는 조훈현 9단의 30연승이다.

지난달 26일 한국기원에서 만난 신 9단은 그런데 ‘저승사자’와는 살짝 거리를 두었다. 신 9단은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또래들이 ‘저승사자’라고 부르지만, 아직은 나만의 바둑 스타일을 갖추지 못했고 그래서 ‘신진서’ 하면 떠오를 만한 별명이 없다”고 말했다. 신 9단은 “이세돌 하면 승부감각, 이창호와 박정환 하면 평정심이라는 키워드가 있지만 난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서 “바람이 있다면 이세돌 사범처럼 승부감각이 떠오르는 기사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9단은 바둑 신동. 남다른 ‘바둑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신 9단의 아버지 신상용(58) 씨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했다. 신 씨는 아들이 태어날 당시 아마 7단이었다. 신 9단의 어머니 송윤옥(51) 씨는 늦게 바둑에 입문했지만 수준급 바둑 실력을 갖췄다. 신 9단은 4세 무렵부터 부친이 운영하는 바둑학원에서 돌을 잡았다. 그런데 1년 만에 초등학교 저학년부 대회를 휩쓸었고, 6세 되던 해엔 부산의 영남초 대회에서 3∼4살 많은 형들을 모두 꺾었다. 신 9단은 “어릴 적이었기에 바둑기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바둑학원에 놀러 갔다가 재미있는 것 같아 바둑을 시작했고 학원에서 몇 년씩 바둑을 배운 형들을 1년 만에 모두 이기면서 바둑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신 9단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형들한테 질 때마다 울음이 터졌다”면서 “지는 걸 정말 못 참는 성격이어서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도 지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신 9단과 가족은 2012년 초 서울 은평구 충암동으로 이사했다. 그의 부모는 부산에 아들의 적수가 없었고, 큰물에서 키우기 위해 ‘상경’했다. 최고의 명문도장인 충암도장에서 프로 데뷔를 준비했다. 이곳에서 신 9단은 형들과 겨루면서 한 단계씩 성장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신 9단은 연구생 시절에도 두각을 나타냈고, 2012년 7월 영재 입단 대회를 통해 프로에 입문했다. 12세에 프로에 입문한 신 9단의 기량은 더욱 빠르게 늘었다. 특히 롤모델인 이세돌 9단, 이창호 9단을 연구하면서 기량을 끌어올렸다. 신 9단은 2013년 초 경남 합천군에서 열린 대회에서 이창호 9단을 꺾었다. 신 9단은 “이창호 사범께서 아무래도 내 실력을 테스트해보셨던 것 같다”면서 “많이 봐주신 듯했지만, 어쨌든 당시 이겼을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시련도 있었다. 승부의 세계에서 늘 이길 수만은 없는 법. 게다가 10대 초반, 중반이었으니. 신 9단은 패배를 곱씹으면서, 아니 머릿속에 기억하면서 발전을 꾀했다. 신 9단은 “2013년 박정환 9단께 한 수 톡톡히 배웠고, 2014년 이세돌 사범과 대국하면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를 느껴 무기력하게 무너졌다”면서 “두 선배와 맞붙은 뒤 누구와 마주하든 내 바둑을 두면서 승리하는 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다. 신 9단은 “최고의 선배들과 겨루면서 자연스럽게 장점을 본받게 됐다”며 “바둑기사 신진서가 성숙해지는 계기였다”고 전했다.

신 9단이 ‘넘버원’으로 성장하는 데 인공지능(AI)도 무척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신 9단은 신세대 기사답게 인터넷 바둑을 즐긴다. 과거엔 일본에서 들여온 교재, 대면 훈련, 그리고 복기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는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세기의 대국을 통해 능력을 입증했고, 그 뒤로 더욱 향상했다. AI의 발전 속도는 한계가 없는 듯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신 9단에게 AI는 훌륭한 길잡이다. AI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그리고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신 9단은 “AI와 언젠가 공개적으로 한번 제대로 붙어보고 싶다”면서 “벨기에에서 만든 릴라제로 등 아직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최고의 AI 바둑으로 실력을 다듬는다”고 귀띔했다.

신 9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바둑기전이 열리지 않는 요즘 인터넷 승부에 빠져 있다. 컴퓨터가 익숙한 세대인 신 9단이 인터넷에서 치른 대국은 이미 2만 번을 훌쩍 넘는다. 신 9단은 “프로 데뷔 전인 2010년 타이젬이라는 사이트에 내로라하는 바둑기사들이 다 모였고 이세돌, 박정환 9단 등 정상급 스타들도 있었다”면서 “당시 프로들이 일반인과 자주 대국했고 다들 익명의 공간에서 가상의 ID로 활동했지만 몇 판만 둬보면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자랑하는 커제 9단과도 인터넷으로 대국했다. 신 9단은 “그때는 커제 9단이 무명이었기에 나와도 자주 대국했다”면서 “그런데 2012년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달라지더니,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대국 신청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신 9단은 제동이 걸렸다. 3월 8일 열린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신민준 9단에게 168수 만에 불계패했다. 신민준 9단은 신 9단에겐 천적. 3월 30일 열린 제21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4강에서 신진서 9단에게 229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신진서 9단은 “신진서에겐 세계 메이저대회에선 우승하지 못하는 기사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그걸 떼기 위해 LG배 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그렇게 바둑에 집중하다 보니 28연승을 거뒀다”고 말했다. 2000년생인 신 9단은 “1995∼2000년대생 바둑기사 중 중국의 커제 9단(1997년생)과 양딩신 9단(1998년생)과 신민준 9단(1999년생) 등 특출난 인재가 참 많다”면서 “그중에서 가장 강한 기사가 되려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바둑이란 뭘까. 누군 우주에,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에 비유한다. 바둑을 몇 개의 단어, 몇 줄의 문장으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입신(入神)의 경지에 올랐지만, 신 9단에게 바둑은 당근보단 채찍이었다. 신 9단은 “바둑을 두면서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다”면서 “바둑은 승부가 나는 게임이기에 바둑돌을 잡으면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둑, 기사의 길로 들어선 걸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신 9단은 “바둑은 게임처럼 재미있고, 끝나면 정신이 맑아진다”면서 “온갖 변화를 구상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바둑이 지닌 매력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신 9단은 “바둑은 배우고, 연구하고, 응용하는 데는 끝이 없는 영역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다”면서 “그렇기에 바둑을 즐기는 게 가장 슬기로운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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