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기억하는 나라, 또한 결혼 이주민과 관련한 뉴스로 만나는 나라. 베트남은 이처럼 우리에게 햇볕과 그늘이 함께 존재하는 나라다. 한국에 경제발전을 가져다준 ‘월남전’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 전쟁의 용병이었던 한국군은 가해자로서의 죄를 역사적으로 짊어지고 있다. 양국 간 아픈 상처가 있음에도 경제 교역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베트남엔 한류 열풍이 불고, 한국엔 베트남 음식과 문화·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책 ‘지금은 베트남을 읽을 시간’(세그루 발행·사진)은 우리가 가깝게 여기면서 막상 잘 알지 못하는 이웃 나라를 세세히 들여다본다. 출판사 세그루가 중국, 일본에 이어 베트남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을 내놓은 셈이다. 저자는 베트남 전문가들이다. ‘지금은 중국을 읽을 시간’ ‘지금은 일본을 읽을 시간’의 대표 저자였던 심형철 박사(중국 베이징중앙민족대 사회과학대학원 민족학 전공)가 이번에도 참여했다. 고교에서 사회과와 지리를 담당하고 있는 박계환, 홍경희 교사도 집필했다. 베트남 하노이 국립대에서 유학한 바 있는 조윤희 청운대 베트남어교육연구소 연구원도 동참했다. 충남외국어고 베트남 원어민 교사(응우엔 티타인떰, 응우옌 타인후옌)들도 함께 뭉쳤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간결하다는 점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문체로 쓴 덕분이다. 사회·문화·역사·지리 등을 설명하되 베트남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으로 소개함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각각의 사례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문화적 배경도 설명함으로써 이해도를 높였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소개하면서 800년 전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 베트남 왕족 출신 이용상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그의 후손 이장발에 이르기까지 양국의 교류사를 재미있게 펼친다.
‘베트남 왕족인 이용상은 고국으로부터 수천㎞나 떨어진 낯선 이방국인 고려를, 그의 후손 이장발은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고려와 조선도 이들의 충성심과 기개를 기려 큰 상을 내리고 사당을 세웠습니다. 이들의 아름다운 선린 정신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밀접한 관계를 맺는 데 굳건한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요? ’
16∼17세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수광이 베트남 선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첫 한류 스타였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수광(1563∼1628)은 1597년에 당시 명나라 수도인 연경(燕京, 현재의 베이징)에 사신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이비엣국의 사신인 풍칵콴(馮克寬·1528∼1613)을 만났습니다. 명나라에서는 외국에서 온 사신에게 여관을 제공했는데, 이수광과 풍칵콴이 같은 숙소에서 50여 일간 머물면서 교류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수광은 30대고 풍칵콴은 70세가 넘었지만 두 사람은 한자로 필담을 나누며 친해졌습니다. 풍칵콴은 이수광이 자신보다 훨씬 어리지만 문장과 학식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시를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다이비엣국에 돌아가 이수광의 시를 널리 소개했기 때문에 다이비엣국의 선비들 가운데 그의 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뭐래도 최초의 한류 스타는 바로 이수광이 아닐까요? 특히 한류의 시초가 K-팝이나 K-드라마, 축구도 아닌 시였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가 왜 베트남 문화를 친밀하게 느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책 앞부분에 실린 베트남 연표는 베트남 반만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자료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책 뒷부분에 실린 ‘톺아보기’다. 도이머이 정책과 권력 구조 등 베트남 경제와 정치에 관해 심화된 관점과 지식을 갖출 수 있다.
“베트남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입문서다.” 오랫동안 아시아권 교류와 화해에 천착해온 이상기 아시아기자협회 창립회장은 이 책을 이렇게 추천했다. 이 회장은 한국기자협회장 시절에 베트남기자협회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한테 창문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를 돌아보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가기도 바빠 과거를 보는 창은 잠가놓고 있습니다. 이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열어보게 되겠죠.”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베트남 사람들이 왜 그 창문을 열지 않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이 회장은 말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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