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

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는 긴급사태가 선포됐습니다. 의료붕괴를 막기 위해 확진자 수를 억제하는, 다른 말로 검사를 억제하는 대응을 취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뒤늦게 자인한 셈입니다. 유럽에 이어 미국이 ‘사태’로 진전된 뒤, 촌분을 다퉈야 할 때가 돼서야 한참 늦게 따라간 것입니다.

그래도 뉴스를 보면 일본 국민의 반응은 다른 나라와 달리 조용한 듯합니다. 그 와중에 아베를 중심으로 일본 극우는 코로나19 사태를 지렛대 삼아 내년 9월 임기 만료까지 ‘자위대 명문화’를 골자로 한 헌법 9조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순응하는 국민’-‘힘없는 시민사회’-‘평화헌법 폐지’라는 고리는 지난 세기 초반을 떠올리게 하지요. 아베가 긴급사태를 선포하며 “코로나19로 전후(2차대전) 최대위기에 직면했다” “시간이 없다”를 강조하는 게 전염병 사태만 염두에 둔 것으로 들리진 않지요.

일본론과 일본인론은 루스 베니딕트의 ‘국화와 칼’(1946) 이후 무수히 쏟아졌고, 한국인이 쓴 책도 여럿입니다. ‘유튜브’ 시대에, 일본에 오래 거주해온 한국인들의 일본에 관한 방송도 요즘 많이 있습니다. ‘좋아요’를 끌어내기 위해 ‘국뽕’적인 요소에 치중하는 방송도 적지 않아 가려서 봐야 합니다.

‘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일본을 꿰뚫는 9가지 키워드’(이승철 지음/행성B)는 최근 일본을 경험하고 공부한 저널리스트 저자의 책입니다. 우리가 일본인에 대해 “왜지?” “우리 정서와 왜 이렇게 안 맞지?”라고 느꼈던 부분들에 대해 적지 않은 실마리를 줍니다. 일본에 대해 품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의문은 근래 부쩍 늘어가고 있지 않은가요?

‘이지메’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의 가장 근원적인 특징인 ‘배제 사회’, 일본인의 무의식에 뿌리 깊은 ‘폐(메이와쿠)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집단 사회’, 약자를 대상으로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묻지마식 범죄로 형상화되는 ‘억압 사회’, 젊은이들의 내부 지향적인 성향과 고령화가 가져온 ‘함몰 사회’, 세습과 파벌로 얼룩진 가장 후진적인 정치 분야를 다룬 ‘호족 사회’, 왕보다는 신적 존재인 ‘제사장’에 가까운 덴노(일왕)가 아직 건재한 ‘종교 사회’, 급속한 쇠락의 원인인 안일주의에 빠진 ‘관례 사회’,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에도 반성하지 못하는 ‘자멸 사회’ 등의 9가지 키워드를 통해 저자는 ‘자기 속박주의’라는 독창적 개념으로 현대 일본을 파헤칩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생생한 르포식 서술과 미디어 분석을 통해 결국 일본은 ‘나쁜 사회’라기보다 ‘아픈 사회’, 즉 ‘병든 사회’임을 드러냅니다. 392쪽, 1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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