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바람 / 남윤잎 글·그림 / 웅진주니어

“바람을 쐬러 가자”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쾌해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두려운 시기다.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와 의료진이 있고 학교와 가게가 닫혀 있다. 어서 이 상황이 끝나야 하기에 함께 답답함을 참는다. 과거의 행동과 미래의 행복이, 한 사람의 움직임과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이만큼 내 삶과 직접 연결돼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걱정 없이 바람도 쐬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하나에 매달려 다른 바람들은 꾹 누르며 집을 지킨다.

남윤잎의 그림책 ‘어느새, 바람’은 책 읽기로라도 바람을 쐬고 싶은 이들에게 상상의 봄나들이를 시켜주는 작품이다. 책을 펼치면 ‘살랑’이라는 매혹적인 낱말이 달력 위에 앉아 있다. 벚꽃, 목련꽃, 개나리꽃 너머의 누군가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규칙적으로 학교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그림책 속의 교실에는 아이들이 있다. 친구랑 화분의 새싹에 물도 주고 복도에서 마스크 없이 수다도 떨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손잡고 달리기도 한다. 이런 장면이 ‘책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전형적인 봄의 풍경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맥락으로 읽히기도 한다. 불안한 현실이 제대로 된 독서를 방해하는 경우다. 작가는 이 책을 그릴 때만 해도 호젓한 공간을 타고 창밖에서 날아오는 향기를 담고자 했을 텐데 ‘평범한 하루’라는 구절만 읽어도 뭉클해진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순간에도 끝까지 힘내!”라는 글이 적힌 이어달리기 장면은 2020년 4월을 위해 그려진 것처럼 느껴진다. 끝까지 읽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 책은 봄에서 시작해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으로 끝난다. 글은 담백하지만 그림을 잘 보면 휘몰아치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흩어지는 단풍잎처럼 헤어지는 연인이 있고 그중 한 사람은 한강 둔치에서, 또 한 사람은 겨울 바다에서 혼자가 된 시간을 견딘다. 먹이 주던 길고양이는 집고양이가 됐고 아마도 새끼를 낳았다. 창가에서는 지난봄에 없던 화분이 푸르게 자란다. 우리는 서로를 지킬 수 있고 머지않아 다시 좋은 봄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책이다. 72쪽, 1만4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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