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헌법상 국가와 행정부를 대표하는 최고위 공무원이면서, 정치적으로는 공식 직함과 무관하게 여당의 최고위 당원이라는 2중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헌법상 의무와 책임이 훨씬 우선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헌법 총강에 나올 정도로 엄중하다. 제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등의 발언을 해 탄핵소추를 당했는데, 헌법재판소는 후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하면서도 ‘선거 중립 의무 위반’에 해당된다고 명시했다. 그만큼 정부의 선거 중립 책임은 막중하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선거에 임박하면 정치적 오해를 받을 국정 행위를 자제하거나 중단했고, 심지어 선거중립 내각을 구성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국무총리와 선거 관리 주무부서인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장관이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문 대통령은 잇달아 현장을 방문하고, 정부는 현금 살포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한 교묘한 관권선거 행태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4월 들어서만 1일 구미, 3일 제주, 5일 강릉, 6일 서울 명동, 7일 인천공항, 9일 경기 성남시를 찾았다. 청와대는 “관권선거를 한 일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적 오해를 피하는 것이 선거 중립의 출발점이다. 현 여당이 야당 시절 대통령의 지방 방문에 대해 “민생 행보를 빙자한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했던 사실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선거 직전 현금 나눠주기는 현대판 ‘고무신 선거’를 연상시킬 정도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52만여 명에게 선(先)지급 형태로 27만 원씩 조만간 나눠주기로 했다. 아동수당을 받는 만 7세 미만 아이들에게 추가로 주기로 한 아이돌봄쿠폰 4개월치 40만 원씩을 선거 이틀 전인 13일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세균 총리는 8일 모든 가구에 100만 원씩(4인 가구 기준) 먼저 지급한 뒤 고소득층에 대해선 추후에 환수하는 방안까지 거론했다.

이쯤 되면 행정부인지, 여당의 선거 하부 조직인지 의심스럽다. 이런 현금 지원의 경기 부양 효과가 미미하다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연구 결과도 나왔지만, 여당 득표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막무가내 신(新)관권선거에 휘둘리지 않도록 유권자들이 정신을 단단히 차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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