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곳곳에서 가정 해체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각국이 이동제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가정폭력 보고 사례가 급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 곳곳에서 가정 해체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각국이 이동제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가정폭력 보고 사례가 급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봉쇄 국가들 ‘코로나 범죄’ 골머리

伊, 피해자 늘자 대피호텔 제공
英 앵커 손등에 신고번호 적어
법정 휴원에 이혼도 빨리 못해

美선 아시아인에 탈취제 뿌려
‘혐오’ 대응하는 홈페이지 등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삶의 방식에 변화를 불러오면서 범죄 발생 동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외 활동이 줄면서 지난달 중순 이후 미국 많은 도시의 재산 관련 범죄가 10∼20% 줄고 지난달 이탈리아의 범죄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 이상 급감했다. 이런 통계만 보면 외견상 범죄율이 낮아졌다는 느낌을 주지만 더 심각한 특정 종류의 범죄는 오히려 증가 추세다. 가정폭력,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혐오범죄, 마스크를 비롯한 방역물품 사기가 이에 해당한다.

◇이동금지령에 가정 내 ‘친밀한 폭력’ 급증=세계 각국에선 이동제한 조치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자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쇄도하고 있다. 봉쇄령을 내린 국가의 가정폭력 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의 징저우(荊州)시에선 봉쇄령이 내려진 2개월간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전년 대비 3배로 늘었다. 미국 여성인권단체인 DC 세이프는 “3월 중순부터 2주 동안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담당자는 “압도적 증가로 응답이 가능한 내선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USA투데이도 지난달 중순부터 2주간 미국 24개 주에서 가정 내 폭력 및 소란 행위가 10∼30% 늘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북아일랜드, 스페인 카탈루냐에서도 이동제한령 시행 후 가정폭력이 전년 대비 20%가량 늘어났다. 영국 가정폭력 상담기관 레퓨지(REFUGE)는 “이동제한령이 내려지면서 지난달 30일부터 일주일간 신고 전화가 25% 증가하고 홈페이지 접속은 150% 급증했다”고 밝혔다. 영국에선 BBC 앵커가 뉴스 진행 중 손등에 가정폭력 신고 전화번호를 적어 보여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전국 이동금지령이 내려진 지난달 17일부터 일주일간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전년 대비 32% 늘었다. 이탈리아에선 봉쇄령이 내려진 후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이용자가 늘자 정부가 빈 호텔을 대피 장소로 제공하기까지 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이동제한령 이후 평상시보다 2배 많은 가정폭력 피해 신고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학대 피해자들은 가정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동 제한 조치 때문에 도망갈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찮기 때문이다. 감염 위험으로 상담소나 지원단체가 피해자를 도우러 오기 힘든 데다 피해자가 이혼을 결심하더라도 법원이 휴정돼 이혼 절차가 연기된다.

학대 관련 연구자들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가정폭력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나 여름 휴가 직후 신고 건수가 증가한다고 전해졌다. 이동제한 조치가 해제되더라도 가족들이 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위험은 이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실직이나 심각한 재정난 등 개인적인 위기상황에서 배우자를 살해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적하며 코로나19의 경제적 파장이 심해지면 이 위기가 계속된다고 경고했다.

◇아시아계를 향한 차별·혐오범죄=코로나19가 확산하는 속도 만큼 시노포비아(중국 공포증)·아시안포비아에 따른 증오범죄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싱가포르 출신의 대학생은 영국 런던의 중심가인 옥스퍼드 가에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비난의 외침을 들은 후 집단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너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피해자에게 주먹을 날렸다. 사우샘프턴에서는 남녀 한 쌍이 중국인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며 “재수 없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포츠머스에선 아시아계 남성이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버스 탑승을 거부당했다. 미국 뉴욕 지하철에 타고 있던 한 남성은 아시아인 승객에게 섬유탈취제인 페브리즈를 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급기야 텍사스에선 2세, 6세 아동을 포함한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 3명이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 일가족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중국인이라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도 수차례 일어났다. 호주에 사는 한국 교민은 SNS에 지난 6일 운전 중 옆 자동차의 백인 남성으로부터 헛기침과 재채기, 비웃음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달 10일엔 한국인 여학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폭행을 당했다.

피해 정도가 심각해지면서 미국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 연합(AAF)이 코로나19로 인해 인종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경우 피해자들이 이를 상세하게 보고하는 식으로 혐오 범죄에 대응하는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자기방어 목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총기 구매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마스크, 손 소독제 품귀에 사기 급증=감염병 확산과 관련한 불안 심리를 이용한 범죄도 속속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기본적인 방역 물품인 마스크, 손 소독제 사기가 눈에 띄게 급증했다. 중국 공안부와 위챗의 모기업인 텐센트(騰迅) 그룹에 따르면 중국에서 2월 24일까지 코로나19 관련 온라인 사기가 7500여 건 접수됐다. 피해 규모는 1억9200만 위안(약 328억 원)에 달한다. 이 중 96.7%는 마스크 판매와 관련됐다.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 판매 사이트에서도 ‘안전기준 인증을 받았다’고 속이거나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다’고 허위 광고하는 제품이 난립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마스크 중 ‘N95’나 ‘N99’라고 내세운 194개 제품을 자체 분석한 결과, 약 65%가 미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인증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고 16개 제품은 인증 사실을 허위로 기재했다고 보도했다. 라텍스 무함유 장갑, 플라스틱 얼굴 가림막 등 제품에서 과장·허위 광고도 많았다. 유럽연합(EU) 경찰기구인 유로폴에 따르면 세계 90개국에서 경찰이 단속한 결과, 불법 약품 440만 개와 모조 수술용 마스크 3만4000개 등이 압수됐다.

방역 물품 외에도 코로나19 사태를 악용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과 라오스에서는 불법 밀수업자들이 ‘코로나19 치료제’라며 멸종위기 동물인 코뿔소의 뿔이 섞인 가짜 약물을 판매해 돈을 끌어모았다. 미국에선 “코로나19 검진 키트, 위생 키트 등을 보내준다”며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범죄자들은 특히 노년층을 상대로 “고령자 돌봄 패키지를 보내주겠다”고 접근해 의료보험번호나 사회보장번호를 빼내고 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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