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쇄신 네이선 가델스, 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지음, 이정화 옮김/북스힐

‘집 없는 억만장자’로 우리나라 언론에도 자주 소개됐고 두 차례 방한한 적이 있는 니콜라스 베르그루엔과 그와 함께 싱크탱크 베르그루엔연구소를 만든 네이선 가델스 ‘월드포스트’ 편집장이 같이 쓴 책이다. 재산이 20억 달러(약 2조3000억 원)에 달하는 베르그루엔은 집과 차를 다 팔고 전용기로 전 세계 곳곳을 돌며 사회변혁을 꿈꾸는 ‘괴짜’로 알려져 있다.

저자들을 ‘좌우’의 도식 속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출간된 이 책보다 앞서 2012년 두 사람이 펴냈던 ‘21세기 지성적 거버넌스: 서양과 동양 사이 중도의 길’의 제목처럼 ‘중도’(middle way)로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미국과 중국의 ‘멀티 폴라(Multi-Polar)’ 시대의 거버넌스에 방점을 둔 제목이었다. ‘민주주의 쇄신’은 좀 더 복잡하다.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유럽에서 브렉시트 및 신우파의 부상 등 포퓰리즘이 쇄도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질서를 지배했던 중도주의 정당들이 변두리로 내몰리고 있다. 변화는 디지털 시대와 맞물려 진행된다. 대중사회가 소셜미디어로 중무장한 다양한 집단으로 세분화되는 가운데 기대와 달리 ‘가짜뉴스’와 ‘혐오’만을 키웠다. 또 ‘디지털 자본주의’는 생산성 증가와 부의 창출이 고용 및 소득의 향상과 무관하며 부의 양극화만 급속하고 크게 벌여놓았다. 이 같은 상황이 민주주의의 위기며, 민주적 제도의 근본 구조를 쇄신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대안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포퓰리즘을 가장 경계하는 저자들의 제도적 쇄신의 핵심은 중립적 엘리트로 구성된 일종의 ‘중심추 역할을 하는 심의기관’(deliberative ballast)을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국가들이 근간으로 삼는 대의민주주의로는 ‘뒤처진 사람들’(left behind)의 포퓰리즘 분출로 이어지는 분노의 축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에 의한 대중의 요구와 권력을 정제하고 차단할 ‘회로 차단기’라는 것인데, 저자들은 미국의 초기 민주주의 때 양원제의 상원(上院)이 바로 그런 목적인 ‘무당파적 중재기관’으로 구성돼 그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과연 ‘무당파적’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들지만, 공정한 제도적 장치로 가능하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와 함께 저자들은 부를 획득한 뒤 ‘재(再)분배’할 것이 아니라 ‘선(先)분배’, 즉 보편적 기본자본 및 로봇 등의 소유권 공유로 전환해 일자리 자체가 아닌 ‘일하는 혹은 일할 사람들’을 보호하도록 사회계약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실현 가능성 때문에 ‘괴짜’라는 수식이 다시 떠오르지만, 민주주의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데 대개 동의하는 마당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내용이다. 288쪽, 1만5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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