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이(1950∼1974)

100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운무(雲霧)가 서리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신선이 되면서 지난 세월에 어렵잖게 젖어들게 하는 곳. 아름다운 경주는 바로 나의 고향이다. 경주와 함께한 어린 시절의 모습들이 요즘 무척 그리워진다. 일찍 일어나 밤새 떨어진 감꽃을 지푸라기 속대에 채우며 즐거워했던 일, 농수로나 개울가에서 미꾸라지와 피라미를 잡아 검정고무신에 넣어오던 일, 소매에 코를 문질러 번질번질한 채로 팔랑개비 돌리며 온 동네를 휘젓던 일, 벼 이삭 고개 숙이는 선선한 계절 누런 들판에 나가 메뚜기 잡던 일, 무논에서 얼음 지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해가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와 씻는 둥 마는 둥 호롱불 아래 밥상머리에 둘러앉던 일. 이제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들이다.

그 시절 경주에는 내게 아름다웠고 또 가슴 아팠던 사람이 있다. 경인년(1950년) 같은 해에 태어난 초등학교 동기생. 소심했던 내게 먼저 다가와 주고 어릴 적 아름다운 기억을 공감했던 그녀. 그녀는 꽃다웠던 스물다섯, 요즘은 아무것도 아닌 폐결핵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나는 군 복무 중이었다. 지금 같은 자유로운 시절이 아니었다. 부음을 접하고도 갈 도리가 없었다. 몇 달 후 휴가를 얻어 그녀의 집을 방문했지만,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순 없었다. 몇 년이 지나 지금의 아내와 가정을 이뤘다. 40여 년간 아이를 키우며 고단한 사회생활을 하느라 그녀를 잊은 체하면서 지냈다. 찰나의 여유가 생길 때면 그녀가 생각났지만 그럴 때마다 바쁜 일상은 밀려왔고 희미하게 다가오던 그녀는 어느새 눈물 꽃이 되어 사라져 가곤 했다.

그러다가 2년 전 고운이의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오빠와 둘째 여동생도 고인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다 생전에 다른 이들을 못 만날 수도 있겠다 싶어 수소문 끝에 그녀의 막내 여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앳된 소녀는 할머니가 돼 나타났다. 그녀를 통해 그동안 알고 싶었던 고운이의 마지막 길이 어땠는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당시 그렇게 몸이 불편하면서도 군 복무 중으로 찾지 못한 내게 섭섭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는 말에 아려 왔던 마음에 아픔이 더해졌다. “이제 그만 놓아주고 잊으세요. 지금 있는 사람에게도 미안한 일이잖아요”라는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고운이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소금강산 백률사를 다녀왔다. 가끔 그녀의 여동생을 만나고 있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고운이, 오빠, 여동생 기일에 3년간 꽃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분황사에 영가등(靈駕燈)도….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중 한 가지는 이렇게 아쉽지만, 마무리되는 것 같다. 칠십을 넘고 머지않아 여기를 떠나게 되면 밝고 소탈했던 그 동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나도 병마 때문에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동무야, 보고 싶다. 만나면 꽃반지 다시 해줄게. 잘 있으시게.”

동갑내기 설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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