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 팔고 유라시아 횡단 이후 6년… ‘빼빼가족’ 최동익 씨
2013∼2014년 직장 그만두고
미니버스 한 대로 24개국 여행
다섯식구 모두 체중 50㎏ 안팎
여행서적 내며 ‘빼빼가족’ 유명
“여행 도중 아이들이 문제 해결
자녀 인생 스스로에게 맡겨야
지금 내 인생은 백지 받은 상태
이번엔 ‘부부 전국여행’ 계획”
부모와 세 자녀 등 일가족 5명이 하나같이 빼빼 말랐다. 가족들의 몸무게는 남녀를 불문하고 50㎏ 안팎이다. 키가 170㎝가 넘는 20대 아들 두 명 모두 병역 신체검사에서 몸무게가 기준에 못 미쳐 현역 입영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가족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빼빼가족’으로 불린다. 가족에게 배달되는 택배 물품 주소란에 택배 기사들이 배달 편의를 위해 빼빼가족이라고 쓸 정도로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유명 인사들이다.
‘빼빼가족’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13년 6월 3일부터 2014년 5월 16일까지 348일 동안 울산에서 유럽의 포르투갈까지 유라시아 대륙 24개국 횡단 여행을 13㎡(4평) 미니버스(일명 ‘무탈이’) 한 대로 성공리에 마친 뒤부터다. 이 여행의 선장은 여행을 처음 제안하고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미니버스를 운전한 아버지 최동익(56) 씨가 맡았다. 최 선장을 필두로 아내 박미진(52) 씨와 딸 다윤(25) 씨, 아들 진영(23)·진우(22) 씨 등이 선원 역할을 했다.
지난 2일 최 씨가 살고 있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인근 한 과수원에 딸린 집을 찾았다. 이 집은 최 씨가 2013년 유라시아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후 살기 위해 친척의 과수원 터에 손수 지었다. 최 씨가 직접 설계해 나무로 지은 이 집은 방이 한 칸뿐이지만 5명의 가족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살고 있다. 세계 여행을 다니며 탔던 미니버스보다는 좀 크긴 하지만 방이 한 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전에 살았던 울산 시내의 한 아파트는 여행비용 마련을 위해 팔았다.
외딴 과수원 근처에 도착하자 누가 봐도 최 씨 부부일 것 같은 빼빼 마른 몸매의 중년 남녀가 마중을 나와 반겼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두 달 넘게 스스로 자가격리 중인데, 외부 사람을 보니 정말 반갑다”며 기뻐했다. 이미 50세를 훌쩍 넘긴 부부지만 이들의 얼굴은 구김살이 없을 정도로 밝았다.
최 씨는 멀쩡한 아파트를 팔고 직장까지 관뒀고, 자녀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홀연히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6년이 지난 현재 이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 씨는 질문하기도 전에 “보시다시피 가진 것은 없는데, 너무 행복하다. 100점 만점에 300점을 주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 씨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던 아내 박 씨도 “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며 맞장구쳤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니 잃은 것도 많았지만 부부는 “가족의 삶의 질은 훨씬 나아졌다”며 긍정의 기운을 뿜어냈다. 최 씨는 “직업을 버리고, 살던 아파트도 팔면서 수입이 불투명해지는 등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졌다”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를 관두면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해 또래 친구들에 비해 큰 손해를 입은 것도 사실”이라고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최 씨는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여행 때문에 힘들어졌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여행 이후 가족 간의 사랑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고, 어떻게 취업을 하고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는 우리 가족의 고민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무모한 것 같기도 한 빼빼가족의 이런 자신감은 여행 과정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 커져 갔다. 최 씨는 “비자 문제로 국경을 넘기 어려웠을 때도 있었고, 여권과 돈을 모두 도난당하기도 했다”며 “힘든 사건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지만 가족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했고 그때마다 ‘우리에게 길은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아내 박 씨는 “이란에서 영상을 촬영하던 중 총을 든 군인에게 보안 문제로 붙잡혀 자칫 형을 살아야 할 정도로 큰 위기에 부닥친 적이 있었다”며 “엄마, 아빠는 겁을 먹고 아무 말도 못 하는데, 언어가 안 통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아이들이 침착하게 손짓 발짓으로 우리 가족이 세계여행 중이고, 절대 스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박 씨는 “몰랐던 아이들의 능력을 몸소 실감해 대견했다”며 “이때 자식들을 어린아이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 인생을 스스로 맡도록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세계여행 후 달라진 가족 개개인의 생활모습도 들려줬다. 우선 큰딸은 여행 후 커피숍 등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 문화홀 공연기획직으로 취업했으나 이것마저도 얼마 뒤 그만뒀다. 지금도 가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딱히 취업에 대한 걱정도 없다는 게 부모의 전언이다. 부모는 딸에게 “요즘 무엇하느냐, 취업은 어떻게 할 거냐, 미래는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질문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 씨는 “부모가 말하는 게 항상 정답은 아니다. 즉 지금 취업을 하는 게 바른길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딸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아들도 마찬가지다. 여행 전후 중·고졸 검정고시를 쳐서 고졸 자격은 취득했지만, 굳이 대학까지 진학하고 싶지 않다는 두 아들의 뜻에 따라 최 씨 부부도 이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는다. “대학 나와서 회사 취업하고 공무원 하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런 거를 위해 대학까지 가고 싶지 않다. 대학은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생기면 그때 고민해보겠다”는 게 두 아들의 현재 마음이라고 최 씨는 전했다. 큰아들은 체중 미달로 현역병으로 입대하지 못한 채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작은아들도 신체검사에서 현역병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공익근무요원 대기 상태로 유라시아 대륙 횡단 여행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크리에이터(채널명 빼빼가족)로 활동하고 있다.
아내 박 씨는 새로 얻은 집 주변의 과수원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여기서 계절에 따라 상추와 깨 등을 심으며 느릿느릿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가끔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남편 최 씨와 온종일 시간을 함께 보낸다.
최 씨는 여행 후 모든 것을 버린 덕분에 백지가 된 도화지를 받아든 상태라며 마냥 웃고 있다. 최 씨의 요즘 직업은 여행작가다. 여행을 다녀온 뒤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 등 몇 권의 책을 펴내면서부터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와 여행에 대한 강의도 했다. 최 씨의 수입은 책 출판으로 받은 인세와 강의료가 전부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강의 요청마저도 거의 없다. 최 씨는 “여행 전 전시기획 디자이너였을 때보다 수익은 형편없이 줄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하지만 내 생각대로 아무것이나 그릴 수 있는 빈 도화지를 얻었다. 남들은 ‘50세가 넘은 나이에 도화지를 어디에다 써먹겠느냐’고 말하지만, 이 도화지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는 최고의 재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후회할 것도 같았는데, 이 질문에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단호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최 씨는 “여행 후 수입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남들 하는 대로 맞춰 옷을 사 입을 필요도 없고, 사회적 공감대를 위한 품위유지비를 쓸 일도 없어졌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아쉬운 점이 없다”고 말했다. 최 씨는 “미니버스 안에서 1년가량 함께 생활하면서 깨달은 가족애만 하더라도 여행이 충분한 가치를 했다고 본다”며 “가족여행을 하지 않고서는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애틋함과 존중, 사랑을 확인했다”고 털어놨다.
가족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충고의 말도 전했다. 최 씨는 “지금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면 당장 떠나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처럼 집 팔고, 버스 한 대로 떠나는 무모한 여행은 권할 일이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은 무조건 떠나야 한다. 지금 여행을 미루면 온갖 이유로 결국 여행을 못 가게 된다. 여행을 다녀오면 자녀들은 부모의 다른 면을, 부모는 자녀들의 또 다른 면을 보고 사랑을 느끼게 된다”고 귀띔했다. 아내 박 씨도 “여행 다녀온 뒤를 걱정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면 애초부터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요즘 ‘시즌2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여행은 가족여행이 아닌 부부여행이다. 집 인근 빈터에 1t 트럭 한 대를 사서 캠핑카로 개조 중이다. 최 씨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이 캠핑카에는 부엌살림과 생활용 공구를 실을 가구가 설치될 예정이다. 그는 이 차가 완성되고,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부부만의 여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최 씨는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국내 방방곡곡을 돌며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캠핑카에 준비한 공구로 시골에 사는 노인분들의 집수리를 돕는 등 봉사활동도 벌인다는 계획이다. 여행 전 전시디자인업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농촌 노인들에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자 최 씨 부부는 완성에 다다른 캠핑카를 소개하며 지붕 위에 올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는 이 차로 백지의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날 것”이라며 “우리 부부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했다.
울산 = 곽시열 기자 sykwa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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