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소한 허세로 큰 웃음
새 코너 ‘개그맨 플렉스’ 인기
시청률 2%대 개콘 구원투수로
30·31기 막내…주 3일 합숙
둘이서 직접 기획·촬영·편집
“컬투 같은 콤비 되도록 최선”
“사실 저희가 돈이 없거든요. 우리는 언제쯤 플렉스(FLEX)를 해보나 하다가… 이런 사소한 것도 플렉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개그맨 플렉스’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전의 전통적 공개 코미디와 달리, 요즘 젊은층에 인기 높은 ‘플렉스’를 새로운 형식의 영상 코미디에 담아내 시청자들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플렉스는 힙합 문화에서 유래된 단어로 자신의 부(富)를 과시하는 것을 뜻하는 일종의 문화적 유행어다.
‘개그맨 플렉스’의 주인공은 KBS 개그맨 공채 30기 김원훈(31·오른쪽 사진)과 31기 조진세(30·왼쪽) 콤비다. 아직은 이름조차 낯선 신인이자 막내들이다. 하지만 시청자 외면과 잦은 시간대 변경으로 2%대 시청률로 추락한 ‘개그콘서트’를 부활시킬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이들은 지난 17일 방송에서도 배꼽 잡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파란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김원훈이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플렉스를 보여줬다. 예를 들어 사과 껍질을 유난히 두껍게 깎아 먹는다든지, 코인 빨래방 세탁기 2개에 양말을 각각 1개씩 넣고 돌리는 식이다. 비록 “미친 짓 아니냐”며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 하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폭소를 유발한다. 그 뒤로 “플렉스”라고 외치며 능청스럽게 얼굴을 내미는 조진세의 액션은 화룡점정 같다. 웃음의 크기를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처음 시작은 유튜브 동영상이었어요. 그러다가 이걸 ‘개콘’에서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져오면서 평소 호흡이 잘 맞던 후배 조진세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진세가 우리 집에서 일주일에 3번은 자고 갈 만큼 붙어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선후배지만 친구처럼 지냅니다.”
두 사람은 기획에서 촬영, 편집까지 직접 한다. 매주 수요일 ‘개그콘서트’ 녹화 촬영이 끝나면 목요일부터 곧바로 아이디어 수집에 들어간다. 가닥이 잡히면 주말에 촬영하고 편집해 월요일에 담당 PD에게 점검을 받는다. 통과되면 ‘개그콘서트’ 무대 녹화 도중에 미리 찍어온 동영상을 띄워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PD님, 작가님과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컨펌하면 저희가 장소를 섭외해서 제작합니다. 촬영은 30기 동기인 송재인 씨가 도와주고요. 편집은 진세가 맡습니다(김원훈).”
“유튜브를 통해 편집 프로그램을 독학했습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편집해 제작진에게 가져갑니다. 화면 속 카피도 만듭니다(조진세).”
둘이서 모든 것을 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다. 촬영은 액정이 깨진 김원훈의 휴대전화로 한다. 얼마 전 촬영 중에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손에 단단히 묶고 할 때도 있다. 고가의 짐벌(흔들림 방지 촬영 보조장비)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사과 깎아 먹기 에피소드에서 김원훈의 어머니가 출연해 등을 때린 건 즉흥적인 아이디어였다.
“모든 게 소재가 됩니다. 일상에서 뭘 하더라도 항상 플렉스를 생각하죠. 요즘엔 선배들이 먼저 아이디어를 주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출연하고 나니 아버지도 출연 욕심을 내셔서 걱정이네요.”
‘개그콘서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관객과 함께하는 공개 코미디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그동안 무관객 녹화를 해왔다. 최근엔 편성 시간까지 옮기자 하락하는 시청률을 잡기 위해 영상 코미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개그맨 플렉스’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회를 잡은 셈이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방청객들이 그립습니다. ‘개그콘서트’의 명성이 퇴색해 개그맨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습니다. 저희 코너가 널리 사랑받아 시청자들은 스트레스를 풀고, 프로그램은 과거의 인기를 되찾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박영진-박성광 선배, 컬투 같은 콤비 플레이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 회도 기대해주세요. 플렉스∼”
■ 용어설명
플렉스(FLEX) : 사전적으로는 ‘구부리다’ ‘몸을 풀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과시하다’ ‘뽐내다’의 의미로 더 자주 쓰인다. 우리 말로는 ‘(돈을) 지르다’ 정도가 비슷할 것 같다. 원래는 19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자신이 가진 부(富)나 귀중품을 뽐내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1992년 흑인 래퍼 아이스큐브가 처음 플렉스라는 말을 가사에 썼고, 이후 일상에서 자주 사용됐다. 닥터 드레, 퍼프 대디 같은 래퍼들이 과거의 빈곤했던 시절을 벗어나 성공한 후 현금을 뿌리고 금목걸이와 고가의 시계를 자랑하면서 더 퍼졌다. 국내에선 지난해 초부터 널리 알려졌다. 래퍼 염따가 한 방송에 출연해 명품을 자랑하며 “플렉스해버렸지 뭐야”라고 말한 뒤로 젊은층 사이에서 “오늘도 플렉스했다” “플렉스 인증” 같은 말로 유행어가 됐다. 최근엔 SNS뿐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 자막으로도 자주 쓰이고, 상품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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