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 보고서가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핵심 내용은, 북한이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다방면에 걸쳐 핵능력을 계속 강화해 왔으며, IT 등 분야에서 합법·비합법적 방법으로 해외 인력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여 이를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석탄이나 정제유 등 제재에 따른 교역 제한 품목들에 대해서도 불법적인 거래가 대규모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북한은 지난해에도 유엔의 제재를 무시한 채 수억 달러를 획득해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무기 체제를 확충하고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잠수함 등을 새로 건조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포괄적이고 강화된 제재 망을 피해 지난해에도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인 것은, 해외 파견 인력의 신분을 위장하거나 사이버상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 무대는 아시아·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과 북미대륙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됐으며, 식당이나 봉제의류 등 단순 노동에서 IT·의료·스포츠·건설 등 고소득 전문 직종으로 바뀌고 있음도 주목할 부분이다. 현시점에서 대북 제재의 무용론이나 한계를 언급하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전혀 사실에 맞지 않는 성급한 주장이다.
북한이 이처럼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외화를 벌어들이고 내부적으로 필요한 전략물자를 수입해 핵능력을 고도화할 수 있는 데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위협 심각성을 피부로 못 느끼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다양한 형태의 도발은 그 자체로 이미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깨뜨린다. 그리고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개별 사업자 차원에서 또는 특정 국가에서 북한의 인력을 단기간에 쉽고 저렴하게 활용하거나 유엔의 제재 품목을 보다 고가로 거래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북한에 우회로를 열어주는 것은 결국 자국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유엔 제재 위반에 대해서는 당장 미국의 강력한 세컨더리 보이콧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불량국가인 북한과의 불법 거래는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국민에게도 해악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집권 여당은 국회에서 막강한 입법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과 선거에 나타난 민심의 향배에 고취돼 남북관계에서 과속할 조짐을 보이는 건 매우 우려된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의 기본정신은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해 남북 간 협력을 다짐한 것이다. 그런데 유엔의 대북제재위 보고서에 명확히 드러났듯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남북 간 합의를 이유로 제재의 틀을 벗어나 대북 지원과 교류 협력에 예외적으로 나서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갈수록 노골화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해 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중단거리 미사일이나 장사정포의 위협에도 그대로 노출돼 있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으로부터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은 유엔의 대북 제재가 충실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는 일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뿐만 아니라 보고서에 지적된 관련국들에 대해서도 유엔의 대북 제재가 철저히 이행될 수 있도록 우리의 외교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