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국회의원 선거에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압승한 뒤 보이는 여권의 행태가 목불인견이다. 총선 전에 청와대 하명수사를 통한 울산시장선거 개입, 조국 일가 비리,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등을 담당하던 검찰 수사 지휘 라인을 공중분해시킨 여권은 이젠 윤석열 검찰총장마저 들어내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총선 직전 범여권 180석을 예상하면서 ‘어용지식인’ 유시민은 “사실상 식물총장 상태”라고 했고, 비례용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의 대표는 “촛불시민은 당신의 거취를 묻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여당 국회의원이 많이 당선됐다고 청와대와 여권의 핵심인사들이 대거 관여된 범죄혐의를 수사하는 검찰 책임자가 물러나야 한다는 건 아무런 논리적 적합성이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호를 앞세운 열린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발언은 특히 문제적이다. 조국 아들의 허위 인턴증명서를 만들어 준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지난 21일 첫 재판에서 “이미 시민들의 심판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당선 직후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깡패나 구사할 것 같은 언어의 수준 낮음은 차치하고, 도대체 선거에 이겼다고 무죄라는 식의 주장을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변호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럼 자신이 떨어졌거나, 여당이 패배했으면 유죄가 된다는 것인가.
마침 23일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기소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13명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됐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야당 소속 김기현 시장을 떨어뜨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 송철호 현 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벌인 것으로 검찰이 판단한 이 사건엔 한병도(전북 익산을)·황운하(대전 중구) 당선자가 각각 청와대 정무수석, 울산경찰청장 재직 당시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있다.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법의 잣대가 굽어서는 안 된다. 사실 이 정도 대형 사건에 연루됐으면 출마를 포기하는 게 양식에 맞는 처신이다. 당사자들이 국회의원 당선이 방탄막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더라도, 여당이 막았어야 했다. 의석을 일정 부분 손해 보더라도 이들을 내칠 수 없었던 피치 못할 속사정이 있었을 개연성도 있다.
법이 공정하게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운 건, 대법원·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를 장악한 여권이 이제 입법부까지 완벽하게 틀어쥔 데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절반에 많이 못 미치는 의석을 보유하고 있을 때도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재판 결과가 나왔다고 판사의 해임과 탄핵을 떠들었던 사람들이다. 7월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발족한다. 가장 큰 문제는 판사와 검사가 공수처의 수사와 기소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공수처가 만들어진 뒤에도 여권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무죄’라고 떠드는 대통령의 최측근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는 판사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그런 사람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아마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지 싶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 데 있지 않다. 법치주의가 이뤄지느냐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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