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m 유관순 동상 만드는 김대길 교수
부릅뜬 눈·꽉다문 입·맨발차림
독립 열망하는 결연한 의지표현
부모잃은 열사 아픔도 담으려해
동상 계획안 짜던 스승 김행신
작년 세상떠난후 작업 이어받아
5월 제막앞두고 마무리 제작중
평소 생명력탐구 추상조각 몰두
유관순 역동성도 내작품과 통해
전남대 미술학과 김대길 교수 제작팀이 만들고 있는 유관순 동상에 대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높이 4m, 폭 1.8m 크기의 대형 유관순 열사 동상은 유 열사의 수감일인 5월 20일 서대문역사공원(옛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제막식을 앞두고 있다. 공정을 살펴보면 광주에서 점토 원형 제작을 마친 후 고양시의 FRP 공장에서 FRP 원형으로 만들어져 23일 현재 청동 주조작업 직전 상태에 돌입해 있다. 청동 주조는 인근 공장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3·1 만세운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유관순이다. 그는 16세의 나이로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후 출소 이틀 전에 순국했다. 김 교수는 이번 동상 작업에서 유관순의 어떤 면모를 부각시키려 했을까.
광주 작업실에서 상경해 고양시 FRP 공장에서 FRP 원형을 손보고 있는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유관순 동상은 ‘동양의 잔다르크’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대한독립’이라는 굳은 의지를 역동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며 “특히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여러 이미지 중 연민보다는 강함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유관순 동상은 지난해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가 유관순 순국 100주년을 맞는 2020년에 세우기로 하고 추진 중인 프로젝트다.
―기념사업회로부터의 동상 제작 의뢰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들었다.
“원래 스승이신 김행신(1942∼2019) 전남대 명예교수께서 계획안을 만들고 있는 작업이었는데, 당뇨합병증인 심근경색으로 지난해 10월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역시 조각가로 전남대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따님 김시내 씨가 어느 날 찾아와 ‘아버지가 해보다가 어려우면 김대길 교수에게 넘겨주겠다’고 말씀하셨다며 중도에 이렇게 멈추면 너무 아까우니 작업을 계속해줄 것을 부탁했어요. 그래서 계획안을 다시 만들어 기념회에 제출했고 심의에 통과돼 지난 연말부터 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상조각’의 권위자로 유명한 김행신 교수는 김 교수의 은사이기도 하다. 김행신 교수를 통해 조각계에 뛰어든 그는 군 제대 후 학교 미술교사 자리도 포기하고 스승의 작업을 도왔다.
“선생님은 부모님 같은 분입니다. 혹독하게 작업을 시키셨어요. 조각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준 선물이 유관순 조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스승의 유지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초기 작업인 ‘점토 작업’을 학교 인근에 있는 김행신 교수의 작업실에서 동료 교수, 제자들과 함께했다. 제작에는 김 교수 외에도 박정용 전남대 교수, 박형오 조각가, 윤종호 조각가 그리고 대학원생 2명과 학부생 1명이 동참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제작 과정을 지휘하는 총감독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동상을 제작할 때는 고증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들었다.
“당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명지대 미술사학과의 이태호 초빙교수, 복식 쪽은 양숙향 순천대 교수 등으로부터 고증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태극기만 해도 지금과 모양이 다르죠. 당시에는 정사각형이었어요. 인쇄 목판 때문에 빚어진 일 같습니다. 태극 모양과 ‘건곤감리’ 순서도 다르죠. 따라서 실제로는 크기나 형상은 현대에 맞추고 태극기의 구체적 묘사는 당시 모양에 맞춰 했습니다.”
김 교수는 유관순 동상 제작에 앞서 세 가지 주제를 정했다고 알려줬다.
“유관순의 ‘동양의 잔다르크’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같은 성품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독립운동을 하며 부모님이 동시에 세상을 떠난 불행 같은 ‘개인적 아픔’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김 교수는 또 “조각상 작업은 야외 공간에 놓이는 상황까지 감안해 비례와 빛의 위치 등 고려할 사항이 많다”며 “서울 이화여고와 장충동에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있지만, 열사가 숨이 다할 때까지 조국 독립을 외친 옛 서대문형무소야말로 꼭 동상이 있어야 할 자리라는 믿음 아래, 후대에 각인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FRP 원형으로만 봐도 유관순은 당당하다. 특히 풍채가 좋다.
“서 있는 초상조각의 경우 역동적이고 힘 있는 포즈를 취해도 볼륨에서 오는 강렬함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한국사람들의 체형을 고려해도 유관순 열사의 나이대는 통통한 것이 맞습니다. 미적 기준도 당시에는 볼륨감 있는 여성이 미인으로 통했죠. 그 같은 시대상황도 감안했습니다.”
―김대길 교수는 원래 ‘추상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추구해온 작품의 ‘추상성’과 ‘기념물 조각’은 배치되는 개념 같다.
“평생 조각 작업을 하면서 우주의 기운, 생명력 즉 바이털리티를 작품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유관순의 강한 정신, 독립의지, 역동성이 내 모든 작품의 주제와도 통하죠. 그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생명력입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추상조각에 대해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지금 내 추상조각의 뿌리에도 구상조각이 있습니다. 내 작품도 자세히 보면 자연의 모습이 다 담겨 있어요. 자연의 본질을 담는 것이 과제죠. 추상과 구상의 차이는 작품의 깊이에 있는 것이지 형상이 아닙니다. 나는 내 추상 작업을 통해 그 깊이를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전남대가 조각 화단에서는 ‘구상조각’에서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방마다 조각작품의 특성이 당연히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카데미즘을 고수해온 전남대는 특히 구상성이 뛰어납니다. 전남대 출신 조각가들은 리얼리티에 강하고 손끝이 매서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죠. 옛 삼국시대에도 백제 사람들이 신라로 넘어가 석탑을 만들어주지 않았습니까. 특히 저는 대학 시절 김행신 교수로부터 배우는 한편, 틈틈이 광주에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던 김영중(1926∼2005) 선생으로부터 배운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인체 형상 조각에 대해 큰 가르침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 선생님은 국내 기념물조각의 거장이지 않습니까.”
김 교수는 이번 유관순 동상 제작과 함께 자신을 교수로 키워준 은인이자 스승인 김행신 교수에 대해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원래 기념사업회 사업이 기부금을 받아 충당돼 제 수익금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은사인 김 교수님께서 해오신 작업을 이어받은 제가 수익금을 다 챙기는 것도 온당치 않습니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이 수익금을 가능한 한 ‘선생님 이름의 장학금으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나를 믿고 교수의 자리까지 올려주신 스승님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검소해 평소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란 오해까지 받았습니다. 선생님 이름의 장학금이 생기면 그 같은 오해도 씻어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상 제작자도 김대길이 아니라 ‘전남대 김대길, 박정룡 교수 유관순 열사 동상제작팀’으로 할 예정입니다.”
그 같은 얘기를 하며 김 교수는 목이 메는 듯하더니 눈시울을 붉혔다. 김 교수는 올해 8월이 정년이다. 그의 계획이 궁금했다. “정년 후 계획은 ‘색’이 있는 조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정통조각을 앞세워 재료의 색에만 의존했습니다. 자연색만 쓴 것이죠. 조각도 색을 이용할 수 있어요. 그러면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문양도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의 작업에 어떤 평이 쏟아질지 모르지만 진정한 예술가가 되려면 비평가들의 평가 대상이 돼야 합니다. 악평이건 호평이건 작품에 대한 평단의 반응이 꾸준히 나와야 진짜 예술가죠.”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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