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대전 블루스’
‘하동 프린스’ 정동원은 중학교 1학년이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같은 반에 영달이라는 곱상한 친구가 있었다. 학급 당 70명 가깝던 시절이고, 각자에게 번호가 있었는데 나랑 그 친구는 둘 다 20번 언저리에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우린 키가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개학날 키 순서로 학생들의 번호를 정해주던 시절 얘기다. 영달이네 집에 놀러갔는데 가난한 소년의 눈엔 한마디로 ‘차이 나는 클라스’였다. 거실에 야자수와 피아노가 있고 가수들 사진도 보였다. “아버지가 뭐 하시는 분이니?” LP 판이 턴테이블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애절한 가락이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왔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이별의 말도 없이/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이 노래를 작곡한 김부해 선생이 영달의 부친이다. 노래 제목은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 아니라 ‘대전 블루스’다. ‘미스터트롯’ 조영수 마스터가 최종 7인에 들지 않은 출연자와 계약을 해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그가 바로 ‘대전 블루스’를 열창한 국악인 출신 강태관이다.
이 노래의 작사가 이름은 최치수. 박경리 소설 ‘토지’의 독자라면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주인공 최서희의 생부와 동명이인이다. 14년 동안 열차승무원으로 일하다가 레코드사로 전직했는데 영업부장일 때 당대 최고의 작사가 손로원을 만나게 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음악동네에선 소월의 ‘진달래꽃’만큼 유명한 ‘봄날은 간다’를 작사한 그분이다.
명곡은 명가수가 계속 불러주고 대중이 따라 부를 때 비로소 국민가요로 탄생한다. 대전역 광장에 노래비가 서있는데 작사가, 작곡가만 있고 가수는 명단에 없다. 비석을 세울 무렵 조용필(사진)이 리메이크해서 빅히트를 쳤는데 원곡을 부른 안정애가 자신의 이름만 비석에 넣는 걸 사양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사실 ‘대전 블루스’는 은방울자매, 문주란, 조미미, 심수봉, 김연자 등 여자 가수는 물론 조용필, 나훈아, 김정호, 장사익 등 남자 가수들도 줄지어 녹음하고 무대에서 열창했다.
노래는 불러야 노래다. 불리지 않는 노래는 박물관에도 못 들어간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송가인이 불러주어서 용두산이 꿈틀대고 대동강이 움직인다. ‘용두산아 용두산아/너만은 변치 말자’(‘용두산 엘레지’ 중), ‘모란봉아 을밀대야/네 모양이 그립구나’(‘한 많은 대동강’ 중). ‘용두산 엘레지’는 열차승무원 경력의 최치수가 작사했다. 뒤늦게 발견한 창의성과 타고난 성실성으로 그는 훗날 아세아레코드 사장이 된다.
브로맨스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영원히 변치 말자 맹세했건만’(‘대전 블루스’ 중), 무심한 세월은 어느 역에선가 우리를 갈라놓았다. 노래를 부르는 건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다.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 친구가 유난히 그리운 봄날이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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